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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세계 1위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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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손해용 기자 중앙일보 경제부장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한국의 불명예스러운 ‘세계 최고’ 목록이 하나 더 늘었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1941조원에 이른 가계부채 얘기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은 101.1%까지 올랐다. 100%를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년 전보다 16.5%포인트 뛰었다. 나라 전체가 1년간 번 돈을 다 합쳐도 가계가 빌린 돈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는 뜻이다.

세계적으로도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수치는 미세하게 차이가 나지만, 국제금융협회(IIF) 조사에서도 한국(100.6%)은 세계 평균(65.3%)을 크게 웃돈다. 소비가 저축보다 많은 과잉소비로 유명한 미국(81.2%)보다도 높다. 비교 대상 34개국 중에선 레바논(116.4%)에 이어 2위다. 레바논은 지난해 8월 베이루트 항구 폭발로 GDP의 30%가량이 감소한 특수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한국이 세계 1위인 셈이다.

빚의 규모도 문제지만, 질이 좋지 않다. 빌린 돈으로 소비하거나 사업에 투자하기보다는 부동산·주식으로의 이른바 ‘빚투’(빚을 내 투자)를 늘려서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영향이 크다.

이는 경제가 생산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벌어들인 돈으로 원리금을 갚다 보면 소비 여력이 준다. 내수 위축으로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다시 소득이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진다. 이런 점에서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 취약계층부터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올해 유동성 가뭄으로 가계부채 부실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라는 우려는 이 연장 선상이다. 정부는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가계대출을 조일 예정이다. 은행들은 코로나19 위기 극복 명목으로 지원했던 이자 유예조치의 연장은 힘들다는 입장이다. 경제의 ‘약한 고리’인 자영업자·소상공인이 가계부채 부실화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자영업자 가운데 금융자산을 깨도 일반 생활이 힘든 ‘유동성 위험’ 가구가 지난해 3월 3.2%에서 올해 3월 6.6~6.8%로 두배가 될 것으로 봤다. 원리금 상환 유예가 연장되지 않는다면 올해 말 9.4~10.4%로 치솟는다.

근원적인 해법은 가계 빚을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고용·투자를 늘리는 경제 활성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규제 완화, 기업 활력 제고 등이 예다. 이를 통해 가계의 소득이 늘면 빚을 갚는 부담을 덜 수 있고, 그만큼 위기는 잦아들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정부에서 경제 활성화와 관련된 가시적인 성과는 찾아보기 힘들다. 가계부채 시한폭탄의 시계는 째깍째깍 제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손해용 경제정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