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2021년]한ㆍ미 ‘가치동맹’ 복원, 존중만큼 요구도 커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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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델러웨어주 윌밍턴에 있는 인수위 사무실에서 외교안보 각료 후보자들을 소개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델러웨어주 윌밍턴에 있는 인수위 사무실에서 외교안보 각료 후보자들을 소개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1월 대선 승리를 사실상 확정지은 뒤 동맹ㆍ우방국 정상들과 통화하며 던진 일성은 “미국이 돌아왔다”였다. 한ㆍ미 관계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야기했던 불확실ㆍ불가측ㆍ불합리성이 상당 부분 제거되며 ‘가치동맹’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전망이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 취임이 동맹의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주는 ‘마법의 주문’은 될 수 없다. 올 한 해 한국 외교에 기회와 도전이 상존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초유의 '방위비 협정 공백' 해소 기대 

바이든 당선인은 외교의 힘을 믿는 전통적인 동맹주의자다. 인수위 구성 뒤 가장 먼저 외교ㆍ안보 각료 후보자들부터 지명하며 “동맹국들과 협력할 때 미국이 가장 강력해질 수 있다는 나의 신념을 구현할 팀”이라고 밝혔다.(2020년 11월 24일) 동맹도 돈벌이의 수단으로 보며 툭하면 주한미군 철수 협박을 일삼았던 트럼프 대통령과는 동맹관 자체가 다르다는 뜻이다.
정부 안팎에서 당장 양국 간 최대 현안 중 하나인 11차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이 국면 전환을 맞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존의 10차 협정은 이미 2019년 12월 31일 종료됐다. 지금은 1년 넘게 협정 공백이 이어지는 초유의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했던 ‘13% 인상안(약 1조 1739억원)’이 최종적 제안이라는 입장에서 변함이 없다. 외교 소식통은 “오바마 행정부 마지막 협상 때를 돌아보면 한국이 방위비 총액 마지노선을 최대 1조원으로 정하고 사수했다. 그런데 13% 인상이면 바이든 행정부로서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전했다.

미국 대선 직후인 지난해 11월30일 한국과 미국은 방위비분담금 특별 협정 협상 상황을 점검했다. 사진은 정은보 방위비협상대사. [연합뉴스]

미국 대선 직후인 지난해 11월30일 한국과 미국은 방위비분담금 특별 협정 협상 상황을 점검했다. 사진은 정은보 방위비협상대사. [연합뉴스]

트럼프 떠난 자리에 남은 트럼피즘 

하지만 방위비 고비를 넘는다고 ‘동맹 비용’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떠나지만, 미국우선주의로 대표되는 ‘트럼피즘(Trumpism)’은 남았기 때문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미국 국민이 ‘미국의 글로벌 위상을 복원하고 싶지만, 비용을 쓰기는 싫다’고 생각하는 게 바이든 당선인의 딜레마가 될 수 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 이전에 이미 오바마 행정부 2기 때 미국은 군비를 축소하며 아시아 지역의 동맹ㆍ우방국들에 안보 자원을 아웃소싱했는데, 이런 방향을 바이든 행정부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런 현상은 미ㆍ중 간 갈등이 심해지며 더 두드러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으로부터 금전적 이득을 추구했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안보 측면에서 역할 분담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12월 코로나19 백신 관련 행사에 참석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EPA=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코로나19 백신 관련 행사에 참석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EPA=연합뉴스]

이와 관련,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ㆍ안보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는 바이든 당선인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아시아 정책 기조인 ‘인도-태평양’이란 개념은 계속 쓰고 있는 점을 주목한다. 인도-태평양 구상 자체가 인도양부터 태평양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의도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대중 압박 연합체' 동참 요구 불보듯  

바이든 당선인은 지난해 12월 28일 외교정책 및 국가안보 관련 연설에서 “무역, 인권 등 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동맹ㆍ우호국들과 연합체(coalition)를 구성할 때 우리 입지가 훨씬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 혼자서는 세계 경제의 25% 정도를 차지할 뿐이지만, 우리의 민주주의 파트너 국가들의 경제력까지 합친다면 우리의 경제적 레버리지는 두배 이상이 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메시지 수위만 놓고 보면 대중 강경론자라고 자부했던 트럼프 대통령보다 훨씬 강하다.

지난 2013년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만난 조 바이든 당시 미 부통령. [연합뉴스]

지난 2013년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만난 조 바이든 당시 미 부통령. [연합뉴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바이든 측 인사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대중 압박을 위해 쓴 관세 조치는 미봉책일 뿐이고, 규칙을 자꾸 어기는 중국을 배제할 수 있는 새로운 통상질서를 미국 중심으로 아예 다시 써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중국의 통치 시스템 자체를 바꾸라는 뜻인데, 이 과정에서 동맹국과 우호국과 힘을 합쳐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로 뭉치자. 한국은?" 숙제 될듯 

특히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뭉치자는 제안은 미ㆍ중 간 줄타기 외교를 해온 한국에는 더 큰 숙제가 될 수 있다. 당장 바이든 대통령 취임 직후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가 한국의 입장을 확인하는 가늠자가 될 수 있다. 정상회의에서 표출될 대중 압박 전략 기조에 정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동참할 지가 관건이다.

지난해 11월 12일 첫 전화통화를 한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12일 첫 전화통화를 한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연합뉴스]

‘문재인-바이든 시대’의 또다른 현안은 북핵 문제다. 지금까지 한국과 미국 모두에 진보 정부가 들어서 북한 문제에서 찰떡 호흡을 과시했던 시기는 김대중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가 겹쳤던 2년 11개월(1998년 2월~2001년 1월)이 전부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이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드라이브에 가속도를 붙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그래서 나온다. 특히 미국의 북핵 접근법이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던 ‘원맨쇼’에서 전문 관료집단 주도로 변화하고, 동맹국의 의견을 존중하는 기존의 한ㆍ미관계로 돌아간다면 문재인 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할 기회도 생길 수 있다.

한·미 북핵 공조, 기회와 도전

하지만 문제는 타이밍이다. 올해 5년차를 맞는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에 마음이 급하지만, 이제 시작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 접근법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고 수립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중국과 ‘신냉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대북 정책은 대아시아 정책, 특히 대중 정책의 일부로 편입될 가능성이 크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바이든 행정부도 북핵 문제에 관심은 갖겠지만, 당장 코로나19로 인한 국내 상황이 좋지 않고 대외적으로도 트럼프 대통령이 망쳐놓은 이란 핵 합의 복원 등이 급하기 때문에 그 와중에 북한 문제를 최우선순위로 인식하긴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그럴 경우 초조해진 북한이 미국의 관심을 되돌리기 위해 도발하는 예전의 양상을 반복한다면 상황은 악화할 수밖에 없고,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한ㆍ미 공조의 수준도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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