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접종은 안된다"는 정부...전문가 "백신 늑장 핑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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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대응 온라인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대응 온라인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가 “코로나19 백신을 세계 최초로 맞는 상황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 안이한 인식…백신 접종이 코로나 종식 길”

감염병 전문가들은 백신 확보전에 전력투구해도 모자랄 판에 ‘백신을 천천히 맞아야 한다’는 정부의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고 지적했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보건복지부 대변인)은 23일 정례 브리핑에서 ‘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이 코로나19 백신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대한 입장을 묻는 질의에 “최근 사회 분위기가 백신을 세계 최초로 맞아야 하는 것처럼 1등 경쟁을 하는 듯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데 방역당국으로서 상당한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손 반장은 이어 “코로나 백신은 개발과정이 상당히 단축됐기 때문에 안전성 문제는 국민을 위해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주제”라며“따라서 백신을 세계 최초로 맞는 그런 상황은 가급적 피해야 되고, 그런 국가들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한 두 달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다행스러운 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접종을 시작한 미국과 영국에 대해 “미국은 누적 사망자가 31만명, 영국은 6만7000명에 달한다. 이들 국가는 사실상 백신 외에 현재 채택할 수 있는 방역 전략이 별로 없는 상황”이라며 “이들 국가를 반면교사로 삼기에는 다소 부적절하고, 세계에서 1, 2등으로 백신을 맞는 국가가 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손 반장은 그러면서 “언론과 사회 쪽에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주된 관심을 접종 시작보다 접종과정의 안전성 확보, 유통 등 과정관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언제 우리가 접종 1등을 하자고 했느냐, 백신 확보를 잘 했어야 한다고 말하는건데 정부가 핀트가 맞지 않는 핑계를 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전문가들 사이에선 내년 3~4월이면 백신 접종국과 미접종국 간에 코로나19 상황이 확연히 비교될 것이라는 얘기를 한다”며 “백신 접종률이 30%만 넘어가도 신규 환자가 급격히 줄어든다. 백신 접종을 서두를수록 코로나19의 위험에서 조금이라도 일찍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1일(현지시간) 델라웨어 뉴어크 소재 크리스티애나케어 병원에서 화이자의 백신을 접종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1일(현지시간) 델라웨어 뉴어크 소재 크리스티애나케어 병원에서 화이자의 백신을 접종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은 상반기 내 자국민 절반 이상 접종을 목표로 하고 있고, 영국 정부는 코로나 종식까지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내년 1분기 접종 가능한 물량이 현재로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50만 도스(75만명분) 정도다〈중앙일보 12월 23일자 1면. 정부는 코로나19 집단면역을 목표로 내년 백신 확보 물량을 최소 3000만명분으로 잡았다. 75만명분은 이중 2.5%에 불과한 물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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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수는 “방역·의료 인력 일부를 제외하고 상반기 백신 접종이 사실상 힘들어진 상황인데 정부는 여전히 백신 부작용 핑계로 둘러대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기석(전 질병관리본부장)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도 “내년 상반기에는 백신 접종이 글렀다. 하지만 코로나 기세로 볼 때 내년 9월까지는 국민 절반 이상에 대한 백신 접종이 완료돼야 한다”며 “그래야 내년 가을, 겨울은 올해와 다르게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영국 옥스퍼드대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아스트라제네카 제공]

아스트라제네카가 영국 옥스퍼드대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아스트라제네카 제공]

정 교수는 “백신 확보전에서 우리가 뒤처진 것은 각국 백신 정보수집을 게을리했거나, 확보 실기를 한 것이라고 본다”며 “지엽적인 핑계를 대지 말고 지금이라도 보건당국을 비롯해 외교부, 국가정보원, 민간 기업 등이 총력전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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