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 더는 안된다는데…트럼프 전시물자법 동원해 추가확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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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일 미국인에게 코로나19 백신이 먼저 돌아가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헀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일 미국인에게 코로나19 백신이 먼저 돌아가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헀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부족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국방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DPA) 발동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법이 적용되면 미국인에게 백신이 충분히 공급되기 전까진 미국 생산 물량의 수출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美 정부와 화이자, 백신 추가 구매 협상 타결 근접 #국방물자생산법 발동, 백신 원재료 공급 조건 #화이자는 2분기 7000만 도스 美에 추가 공급 #미국인 상반기내 접종 완료 가능해질 듯

2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와 코로나19 백신 추가 구매 협상 과정에서 DPA의 발동 가능성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협상 결과 화이자는 내년 2분기에 백신 수천만 도스를 미국에 추가로 공급하고, 미 행정부는 백신 제조에 들어가는 원료를 원할하게 공급할 수 있도록 DPA를 발동하는 내용이 계약에 담길 전망이라고 NYT는 전했다. 협상 결과는 이르면 23일 발표될 예정이다.

당초 트럼프 행정부는 화이자에 내년 2분기(4~6월)에 백신 1억 도스를 추가 공급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화이자는 2분기에 공급할 물량은 이미 다른 나라와 계약돼 있다며 난색을 보였다. 미국이 추가 구매를 주저하는 사이 화이자는 유럽연합(EU)과 2억 도스 등 여러 해외 정부와 백신 계약을 체결했다.

대신 화이자는 백신 제조에 필요한 원자재 공급을 늘려주면 7000만 도스가량을 2분기에 더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미 정부에 제안했다고 한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가 DPA를 동원해 화이자가 백신을 만드는 데 필요한 9가지 특수 재료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때 제정된 DPA는 전시와 같은 급박한 상황이 닥쳤을 때 대통령에게 민간기업의 핵심 물자 생산 확대를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DPA 적용을 받아 생산된 물품의 수출을 금지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미국인의 코로나19 백신 우선 접종이 보장돼야 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접종을 원하는 미국인이 모두 맞은 후에야 백신을 수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DPA를 발동하겠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면서도 "그것은 매우 성공적으로 사용된 바가 있고 알다시피 매우 강력한 행위"라고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DPA를 발동해 제너럴모터스(GM) 등 미국 기업들에 마스크와 인공호흡기의 생산을 늘릴 것을 지시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내년 상반기(1~6월)에 화이자와 모더나로부터 코로나19 백신 3억 도스를 공급받을 예정이다. 두 회사가 1분기(1~3월)에 각각 1억 도스씩 공급하고, 모더나는 2분기에 추가로 1억 도스를 납품한다.

한 사람이 2회 접종해야 면역력이 생기기 때문에 상반기에 1억 5000만 명이 맞을 수 있는 물량을 확보한 셈이다.

백신 접종을 할 수 있는 연령대(화이자는 16세 이상, 모더나는 18세 이상)의 미국인은 모두 2억6000만명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현재까지 확보한 물량으로는 접종 대상 미국인의 절반 조금 넘는(57%) 인원이 내년 상반기까지 접종을 마치게 된다.

여기에 화이자와 추가 구매 계약이 성사되면 내년 2분기에 최소 7000만 도스를 공급받고, 다른 회사 백신이 내년 초 미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긴급사용 승인을 받는다면 산술적으로는 미국인 대부분이 상반기 중에 백신 접종을 마칠 수 있다.

브렛 지로어 보건복지부 차관보는 지난 20일 ABC뉴스에 출연해 세 번째 백신 후보로 존슨앤드존슨 계열사인 얀센을 언급했다. 그는 "얀센이 내년 1월 FDA에 긴급사용 승인을 신청할 것"이라면서 "결과는 모르지만 1월까지 최소 3종류 백신을 갖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재료 공급 문제를 해결해도 화이자가 얼마나 신속하게 백신을 생산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고 NYT은 전망했다.

이와 관련해 화이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원료 공급을 조금 더 일찍 도왔다면 지금 같은 백신 공급 부족은 없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화이자가 그렇게 얻은 재료를 미국인만을 위한 백신 생산에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거부했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았던 것이란 입장을 보였다. 미 정부로써는 DPA를 발동해 확보한 '자산'은 미국 내 판매와 생산을 위해서만 사용하도록 하는 게 의무인데, 화이자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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