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이 칭찬한 동탄 행복주택 4집 중 1집 공실 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1면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방문한 동탄2신도시 행복주택은 가구의 25%가 비어 있다. 최현주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방문한 동탄2신도시 행복주택은 가구의 25%가 비어 있다. 최현주 기자

14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동탄2신도시 행복주택(A4-1블록). 지난 11일 문재인 대통령이 ‘살고 싶은 임대주택’ 현장 점검 차원에서 방문한 단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한 임대주택 중 규모도 크고 공들여 지은 단지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단지 안에 어린이집부터 실내놀이터, 작은 도서관, 게스트하우스까지 갖췄다.

인근 민간아파트는 올해 3억 뛰어 #아이 있는 젊은 부부들 선호 지역 #수요 고려 없이 빈땅에 물량 채워 #“10년 뒤 다시 유목민, 누가 원하나”

문재인 대통령이 “신혼부부 중에 선호하는 사람이 많겠다” “앞으로 이런 곳에 중형 평수까지 포함하면 중산층들이 충분히 살만한, 누구나 살고 싶은 임대아파트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고 호평했을 정도다.

현장 점검 당시 변창흠 LH 사장(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은 “모든 국민이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면서 항시 지켜보는 곳”이라며 경부고속도로 기흥IC 인근에 위치한 우수한 입지를 강조했다.

실제 교통 편의성을 알아보기 위해 단지에서 도보 3분 거리의 버스정류장에 가보니 버스노선은 3개였다. 동탄 1·2 신도시만 운행하는 마을버스 1개 노선과 서울 강남을 연결하는 광역버스 2개 노선이 전부였다. 동탄역(SRT)까지는 마을버스로 20분 정도(4개 정거장) 걸렸다.

이 단지의 총가구 수는 1640세대다. 이 중 약 410가구는 공실이다. 지난해 9월부터 입주자를 찾고 있지만 네 집 중 한 집꼴로 비어 있다. 입주자를 찾지 못한 탓에 올해 소득 기준을 중위소득 100%에서 130%로 완화해 추가모집 공고도 두 차례 했다. 누구나 살고 싶은 임대아파트라는 호평이 무색할 지경이다.

동탄 임대주택 옆 민간 아파트 시세.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동탄 임대주택 옆 민간 아파트 시세.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문 대통령이 방문한 집도 공실로 비어있던 곳을 LH가 ‘본보기집’처럼 급히 꾸민 것이다. 이를 두고서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새벽에 드릴질 해서 잠 못 잤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LH 측은 “대통령이 방문한 집은 앞으로 본보기집으로 운영할 계획”이라며 “동탄 신도시에 공급 물량이 많은 탓에 공가가 많지만 내년에 추가 모집하면 다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탄 공급 물량이 많아 썰렁한 임대주택 단지와 달리, 인근 민간 아파트 단지 분위기는 뜨겁다. 올해 들어 매매가도 전셋값도 급등했다. 국토부 실거래가 현황에 따르면 행복주택 인근에 있는 동탄센트럴자이 전용 84㎡의 경우 지난 1월 6억원대였다가 10월엔 9억4000만원에 거래됐다. 비슷한 시기 2억대였던 전세매물은 임대차법의 영향으로 지난 9월 5억원대에 거래됐다.

총 559가구가 사는 이 단지에 전세 매물은 통틀어 4개뿐이다. 동탄역에 가까울수록 시세는 더 급등하고 매물도 부족하다. 분양 업계의 한 관계자는 “동탄신도시에 공급 물량 많아 미분양 나던 시절은 옛말”이라고 전했다.

동탄신도시의 공공임대와 민간 아파트의 온도 차는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 탓이다. 정부가 공급자 중심으로 펼쳐온 공공임대주택 정책의 단면이기도 하다.

30~40대 아이 있는 젊은 부부가 많이 사는 동네지만 문 대통령이 방문한 행복주택의 경우 제일 큰 평수가 전용 44㎡(투룸)다. 대통령이 방문한 복층형(전용 41㎡)의 경우 100가구 중 33가구가 공실이다. 가장 공실률이 높은 곳은 전용 16㎡다. 450가구 중 210가구가 비어 있다. 예비자도 없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수요가 있는 곳에 임대주택을 지어야 하는데 LH가 대규모 택지개발을 하는 신도시에 물량만 따져 공급하는, 전형적인 공급자 중심 사업방식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임대주택을 원하는 저소득층은 많고, 기본적인 수요 총량을 알기 위해 대기자 명부를 만드는 게 시급한데 문 정부는 이를 2023년에 하겠다며 미뤄놨다”며 “임대주택을 원하는, 소득 기준 130% 이하의 수요가 얼마나 되는지 숫자로 나오면 아마 중산층까지 사는 임대주택 한다는 소리는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거 복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임대주택을 전 국민을 위한 주거 대책으로 접근하는 것도 문제다. 동탄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임대로 살다가 분양받을 수 있다면 사람이 몰려 ‘대박’이었겠지만, 최대 6~10년 살다가 나와 또 집을 구하는 유목민이 돼야 한다”며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원하는 만큼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내 집’”이라고 말했다.

한은화·최현주 기자 onhw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