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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 사이 주눅든 내게 용기준 음악”…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중앙일보

입력

모차르트 작품을 녹음해 음반을 낸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사진 마스트미디어]

모차르트 작품을 녹음해 음반을 낸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사진 마스트미디어]

지난달 24일 나온 피아니스트 선우예권(31)의 모차르트 음반(음반사 데카)은 드라마틱하다. 보통 단순하고 맑게 표현하는 모차르트의 음악에 그는 어두운 색, 감정의 굴곡을 넣었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들이 많이 치는 소나타 16번 K.545를 이끌어가는 감정도 단순하지 않다. 8일 전화 인터뷰에서 선우예권은“모차르트 곡은 신기하다. 유쾌한 음악인 것 같아도 그 안을 보면 열정, 슬픔, 고뇌가 가득하다”고 했다. 2017년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후 3년동안 미뤄왔던 첫 음반에 이처럼 주관 뚜렷한 해석을 실었다.

선우예권은 한국의 예술학교(예원학교, 서울예고)에서 수석을 도맡다 15세에 미국의 명문인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한, 잘 알려진 신동이었다. 하지만 그는 “유학생활 초기는 주변 친구들에게 주눅이 들어서 힘든 시간이었다”고 기억했다. “전 세계에서 1등만 하다 모인 커티스의 친구들은 다들 음악적 아이디어가 넘치고, 음악성도 풍부했다. '나는 뭐지, 정말 바보인가'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피아노 음악에만 매달렸던 그가 여러 장르의 음악으로 시야를 넓힌 게 이 때였다. 다른 악기들과 함께하는 실내악 뿐 아니라 성악곡과 오페라까지 찾아 듣고 익혔다. “유학 3년차쯤 됐을 때 모차르트 소나타 13번을 친구들 앞에서 연주했는데 처음으로 ‘좋은 음악’이라는 인정을 받았다.” 선우예권에게 모차르트는 음악적인 자신감을 처음 안겨준 작곡가였다. 첫 정식 앨범에서 모차르트를 선택한 이유다.

“모차르트에게 단순한 작품은 없다. 표현 하나하나가 다 특정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번에 그런 성격을 파악하고 드러내고 싶었다.” 선우예권은 이번 음반이 드라마틱한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모차르트의 22개 오페라 중 선우예권은 ‘돈조반니’를 가장 좋아한다. 스페인 희대의 바람둥이인 주인공 돈조반니를 통해 모차르트의 음악은 인간 감정의 변화를 자유자재로 표현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중에서 어둡고 비극적이며 음악의 진폭이 큰 작품이다. 선우예권이 연주한 모차르트는 많은 면에서 오페라 ‘돈조반니’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모차르트의 경우엔 피아노를 연주하면서도 그의 성악곡과 오페라에서 영향을 받는 경우가 특히 많다”고 했다.

이번 앨범에는 소나타 5곡, 환상곡 두 곡과 소품 두 곡을 담았다. “좋아하는 모차르트 곡을 다 적어봤는데 도저히 뺄 곡이 없어서 재생 시간이 130분으로 길어지며 CD 두장 분량이 됐다”고 했다. 녹음 작업도 고된 일이었다. “닷새 꼬박 녹음을 하고 나서는 두 달 동안 피아노를 멀리했을 정도”라고 했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연합뉴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연합뉴스]

선우예권은 이달 말부터 모차르트와 쇼팽을 연주하며 전국 투어 무대에 설 예정이다. 선우예권은 “이전에는 내 음악회 프로그램을 보면 ‘왜 이런 작곡가들을 섞어놨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연주하고 싶은 곡을 한꺼번에 넣어놓곤 했다”면서 “앞으로는 내가 원하는 음악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작곡가와 작품을 고르려고 한다"고 말했다. 20대의 끝자락에 대형 국제 콩쿠르로 이름을 알린 그는 “서른을 넘긴 지금 바라는 건 평생 음악과 연주를 하는 것”이라며 “올 3월 미국과 유럽 연주가 취소되기 시작했고 내년 또한 불투명하지만, 우선 할 수 있는 연주부터 집중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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