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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에게 들리는 소리를 듣는다…온라인 공연 진화 어디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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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한국을 줌으로 연결해 공연하고, 이를 녹화해 온라인으로 상영한 연극 '보더라인'의 제작 장면. [사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독일과 한국을 줌으로 연결해 공연하고, 이를 녹화해 온라인으로 상영한 연극 '보더라인'의 제작 장면. [사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올해로 20년째인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의 참여 작품 17편 전체는 지난달 12~29일 네이버TV 사이트에서만 볼 수 있었다. 코로나19 여파로 대면 공연은 하지 않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함께 SPAF를 공동주최하는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기반팀의 이연경 팀장은 “영상으로만 공연을 보는 것에 대해 고민과 이견도 많았지만 온라인 공연을 통해 코로나19와 같은 인류의 문제를 짚을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고 했다. SPAF의 연극, 무용 작품 중엔 코로나19를 내용에 반영하거나, 영상만의 기법으로 공연을 재해석한 것들이 눈에 띄었다.

공연 온라인 정착에 따라 여러 시도 등장

올 2월 이후 세계 공연장이 폐쇄된 후 온라인 공연은 새로운 기법을 발전시키며 독자적 어법 단계로 왔다. SPAF 참여 작품을 비롯해 온라인으로 특화된 최근 세가지 시도를 소개한다. 온라인 공연이 어디까지 진화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사례들이다.

지휘자처럼 듣는다

무대 위 출연자를 선택하면 화면이 전환되고 그들의 악기 소리를 두드러지게 들을 수 있게 한 '온:클래식'. [사진 콘텐츠웨이브]

무대 위 출연자를 선택하면 화면이 전환되고 그들의 악기 소리를 두드러지게 들을 수 있게 한 '온:클래식'. [사진 콘텐츠웨이브]

하나의 공연을 6개의 시점에서 볼 수 있는 시도가 나왔다. 지난달 30일부터 유료 상영 중인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협연 음악회다. 오케스트라의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서곡으로 시작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베토벤 교향곡 1번을 차례로 무관중 공연해 녹화했다. 중심 화면엔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를 한 눈에 보는 시점이 담겼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온라인 공연과 크게 다른 점이 없지만, 새로운 점은 아래쪽에 5개 분할 화면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차례로 지휘자, 무대 전경, 현악기, 피아노(피아노가 없을 때는 관악기), 해설의 작은 화면이 삽입됐고 시청자는 이 작은 화면을 선택해 메인 시점을 바꿀 수 있다. 예를 들어 지휘자를 선택하면 지휘자가 중심이 된 화면을 크게 보면서 지휘자에게 들리는 것처럼 녹음ㆍ편집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피아노를 선택하면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면서 듣는 것과 비슷하게 세팅된 음향이 들린다. 제작진이 판단하고 선택한 영상과 사운드를 계속해서 제공했던 지금까지의 온라인 공연과 차별화한 부분이다.

영상을 제작한 SK텔레콤의 임성희 부장은 “온라인 공연이 장기화하면서 관객의 요구가 변화했기 때문에 선택한 기법”이라고 설명했다. “여태까지 온라인 공연의 방식은 전문 제작진이 선택한 최상의 시점과 사운드를 제공했다. 하지만 사실 온라인 공연 관객에게는 과잉 친절일 수 있고, 의견이 어긋날 수도 있었던 부분이다. 온라인 공연을 본인의 선택에 따라 원하는 방식으로 소비하는 시청자가 등장할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 이번 공연 영상의 타이틀은 ‘온:클래식’이며 Btv와 웨이브(Wavve)에서 1주일 시청시 1만890원, 소장은 2만790원이다.

줌+녹화+온라인 상영

줌을 이용해 독일과 한국을 연결한 '보더라인'. [사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줌을 이용해 독일과 한국을 연결한 '보더라인'. [사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SPAF에서 지난달 15일 온라인 공연한 연극 ‘보더라인’은 영상을 복합적으로 사용했다. 우선 지난달 독일 뮌헨의 무대에서 독일 배우들이 공연을 하면서 무대 위에 커다란 화면을 설치했다. 한국의 배우들은 대학로 무대에서 함께하는 모습을 실시간 화상회의 시스템인 ‘줌’으로 연결해 뮌헨 무대의 화면에 띄웠다. 이 장면을 녹화해 네이버TV에서 상영한 것이다.

‘보더라인’의 이경성 연출가는 “원래는 두 나라의 배우들이 한 무대에 서는 공연이었는데 코로나19로 변경한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공연하는 무대를 그대로 녹화해 영상 중계하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결국에는 줌을 이용했다. “공연의 라이브성이 중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코로나라는 제약 상황을 만났을 때 원래대로 공연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것 대신에 그 제약 자체를 기술을 통해 표현하는 방법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공연의 범주를 확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이경성 연출은 “줌이라는 기술을 통하지만 끊어지거나 딜레이될 수도 있다는 긴장감이 있었기 때문에 무대 공연처럼 현장감이 있었다고 본다”며 “공연을 찍어서 영상으로 내보내는 것뿐 아니라, 기술과 공연을 접합하는 여러 시도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가려움 전달’에 도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중 하나로 온라인 중계된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 중 한 장면. [사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중 하나로 온라인 중계된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 중 한 장면. [사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무용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는 무용수 3인이 관객과 섞여 앉는 대형으로 지난해 소극장에서 초연했다. 관객 20여명이 원형으로 놓인 의자에 앉고 무용수들이 그 의자 위, 혹은 원형의 중심에서 움직이는 동선의 안무였다. 이 공연은 이번 SPAF 작품 중 하나로 지난달 18일 온라인 공연됐다. 무용수들은 역한 냄새를 피하려 숨을 참는 듯한 동작, 손이 닿지 않는 신체 부위를 긁으려 노력하는 동작 등을 반복한다. 이런 동작을 보는 것만으로도 관객은 냄새를 느끼는 듯하고, 어딘가 가려움을 느낀다는 의도로 만든 공연이다.

‘나는 그 사람이…’의 황수현 안무가는 “이 공연의 영상화가 난제였던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무대 공연에서 관객은 적극적으로 공연에 개입하게 된다. 무용수들이 오랫동안 다리를 떨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다리도 흔들어보는 식이다. 공연의 주제가 감각 전이에 대한 일종의 실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상에서는 이런 효과를 내기 힘들었다. 황수현 안무가는 “영상만의 어법을 도입해야 했다. 무용수가 관객 가까이 가는 장면에서는 클로즈업을 많이 쓰는 식이었다”며 “보고 듣는 것뿐 아니라 경험하는 것까지 카메라가 담을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었다”라고 했다. 온라인 공연의 기법과 방식이 여러 방향으로 확장을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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