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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해보는 것 아니다” 지휘 데뷔 앞둔 피아니스트 김선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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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지휘자로 정식 데뷔하는 피아니스트 김선욱. "기회가 되는대로 지휘하겠다"고 했다. [사진 빈체로]

다음 달 지휘자로 정식 데뷔하는 피아니스트 김선욱. "기회가 되는대로 지휘하겠다"고 했다. [사진 빈체로]

피아니스트 김선욱(32)의 꿈이 오랫동안 지휘자였다는 것은 공공연한 일이다. 18세에 영국 리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혜성 같이 등장한 2006년부터 “언젠가 지휘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우승 후 빼곡한 피아노 연주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2010년 영국 왕립음악원에 입학했다. 지휘 전공이었다. 3년 만에 학교를 마쳤는데,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는 소식은 통 없었다.

12월 14일 KBS오케스트라와 브람스 교향곡 2번 연주

그런 그가 다음 달 지휘대에 선다. 14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 KBS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피아니스트가 작은 규모의 오케스트라와 피아노를 협연하면서 지휘를 병행하는 일은 꽤 된다. 이번에도 김선욱은 1부에서는 베토벤 협주곡 2번으로 피아노와 지휘를 함께 한다. 하지만 2부에서는 그야말로 지휘자로 본격 데뷔한다. 연주곡은 브람스 교향곡 2번. 4악장 규모로 연주 시간 40여분에 이르는, 독일 교향곡의 계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곡이다. 김선욱이 드디어 지휘자가 되는 시간이다.

20일 전화 인터뷰에서 김선욱은 “나에게 정말 중요한 무대다. 첫 단추고, 첫 발이다”라고 했다. “피아노 연주와는 달리, 이번 지휘 공연을 앞두고는 잠이 안 올 정도로 걱정이 된다.” 공연을 위해 입국해 자가격리 중인 그는 “왕립 음악원 재학 시절 수업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해보고, 2015년에 영국 본머스 심포니와 깜짝 앙코르를 지휘한 적은 있지만 실제 무대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이제 본격적으로 지휘자로 자리잡는 것일까. 그는 “피아노를 등한시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지휘 한 번 해볼까’정도로 하는 건 절대 아니다. 잘하고 싶고 앞으로 기회가 되는대로 지휘는 무조건 많이 하려한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휘자의 꿈을 알리고, 공부까지 마친 때에 비하면 데뷔가 예상보다 늦다.

“영국에서 지휘 공부를 정말 힘들게 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0시~오후 5시 학교에 있어야 했다. 지휘과 전체가 6명이었는데 다른 학생들 하는 걸 다 보면서 배우고 익혔다. 멘델스존 교향곡의 오케스트라 악보는 한번에 훑으면서 피아노로 칠 수 있어야 했다. 끝나고 집에 오면 그때부터 피아노 연습을 했다. 하루가 총알처럼 지나갔던 시절이었다. 졸업하고 ‘드디어 피아노 연습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었다.”

졸업 후에는 지휘 무대에 설 마음이 없었던 건가.

“중요한 피아노 무대가 이어졌다. 한국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연주했고, 유럽에서도 꾸역꾸역 연주 활동을 계속했다. 2014년엔 영국에서 프롬스 축제에 데뷔 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이 더 중요했던 때다.”

지휘를 공부하면서 익숙해졌는지.

“전혀 익숙해지지 못했다. 수업은 정말 힘들었지만, 실존을 위한 훈련에 가까웠다. 공연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휘자로서 이끌어본 실전 경험이 없다. 학교에서는 주로 피아노를 가지고 교향곡을 연습하고, 학생 오케스트라를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지휘해봤다. 그럴 때마다 정말 많은 경우의 수로 오차가 생기는 것을 알게 됐다. 결국 지휘는 경험으로만 체득이 되고, 그래서 정말로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피아노와 비교해 어떤 점이 어려운지.

“악기 연주는 어느 정도 객관성이 있다. 노력한 만큼 결과와 보상이 예상 가능한 선에서 흘러간다. 하지만 지휘는 첫 리허설, 즉 오케스트라를 직접 만나보기 전까지 아무 것도 예상 할 수 없다. 내가 원하는 소리와 흐름을 구상해 놓긴 하겠지만 그걸 구현하는 건 오케스트라이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두렵고 걱정이 되고 떨려서 잠이 안 올 정도다.”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학생 오케스트라와 지휘를 연습하던 김선욱. [사진 김선욱 제공]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학생 오케스트라와 지휘를 연습하던 김선욱. [사진 김선욱 제공]

미뤄오던 지휘를 다음 달에 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30대 때가 도전하고 만약에 실패를 하더라도 그게 자양분이 될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는 하나하나 단계를 밟을 때라고도 본다. 본래는 피아노를 멀리하게 될까 걱정 했었는데 이제 자신이 생겼다. 피아니스트로서 확실한 음악관이 생겼고, 효과적으로 에너지를 분산해 연습하고 준비할 수 있게 됐다. 지휘가 ‘한 눈 파는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

어려서부터 말러 교향곡을 피아노로 치곤 했다. 오케스트라 지휘를 꿈꾸게 된 때를 언제였나.

“워낙 지휘자 정명훈 ‘빠’였다. 12살이던 2000년 1월 1일 0시 서울 예술의전당에 있었는데, 베토벤 ‘합창’ 교향곡의 사운드가 가슴 속 불덩이를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것 같았다. 중학교 이후엔 피아노 악보보다 오케스트라 총보를 훨씬 많이 샀다. 피아노는 음악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었다. 나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인데 단순히 ‘피아노 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서운할 정도였다. 피아노와 지휘의 범주 구분은 불필요하다.”

김선욱이 2010년 지휘자 정명훈에게 사인을 받은 말러 교향곡 2번 악보. "네가 언젠가 이 곡을 지휘할 날을 기대한다"고 쓰여있다. [사진 김선욱 제공]

김선욱이 2010년 지휘자 정명훈에게 사인을 받은 말러 교향곡 2번 악보. "네가 언젠가 이 곡을 지휘할 날을 기대한다"고 쓰여있다. [사진 김선욱 제공]

앞으로 지휘 계획은.

“기회만 생기면 하려고 한다. 요즘엔 협연하러 가서도 오케스트라에 제안을 많이 한다. 지휘도 해보겠다고. 지휘자로서는 애송이지만 지휘해보고 싶은 곡이 정말 많다. 너무 많다.”

피아노 연주 무대도 이어진다. 다음 달 8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8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정경화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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