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해할 수 없는 강경화 장관의 방미 행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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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8일부터 미국을 방문 중이다. 9일 공식 초청자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의 회담에 이어 조 바이든 당선인 진영의 외교안보 담당 인사들을 만나 한·미 양국 현안에 관한 의견을 나누고 우리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이 시점에서의 강 장관 방미가 과연 적절한 것인지 의문스럽기 짝이 없다.

시기 선택, 방미 목적 적절성 의문 #대북 정책 재검토부터 서둘러야

강 장관이 폼페이오 장관 등 미국 조야에 전한 메시지는 엊그제 문재인 대통령이 한 발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정부와의 사이에 이뤄낸 소중한 성과가 차기 정부로 잘 이어지고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은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톱다운’ 방식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기조가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계속 이어지길 희망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우리 정부는 내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한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국제 무대로 불러내 정상외교를 추진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강 장관도 방미 길에 이런 입장을 설명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바이든 진영이 예고하고 있는 한반도 전략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트럼프-김정은의 세 차례 만남을 실패로 평가했다. 김정은에게 국제적 명망을 제공해 주었을 뿐 아무런 실속이 없었고 오히려 북한의 핵 능력은 급격히 고도화됐다고 바이든은 지적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에는 트럼프 시절의 대북 정책을 뒤집는 대전환이 예상된다. 트럼프 시절의 성과를 이어가자는 발상은 바이든 진영에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강 장관은 어제 바이든 캠프에서 외교안보 분야를 담당하던 사람들과 연쇄 회동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누구를 만났는지는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바이든 캠프에는 외국 정부 인사들과 만나서는 안 된다는 접촉금지령이 내려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는 4년 전 트럼프 캠프 인사들이 러시아 정부 인사와 접촉한 것이 대선 개입 스캔들을 불러일으킨 사례에서 교훈을 얻은 것이다. 바이든 측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노력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상대방이 만남 자체를 공개할 수 없을 정도로 민감한 상황 속에서 서둘러 회동하는 것이 향후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미 대선의 혼란이 가라앉지 않은 시점에 이뤄진 강 장관의 방미는 목적과 시기 선택 모두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다. 지금 우리 정부가 해야 할 급선무는 섣불리 기존 입장을 바이든 측에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출범할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우리의 기존 정책을 재검토하는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