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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수사 않는 법무부가 특활비 10억원 왜 썼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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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9일 여야가 검찰의 특수활동비에 대한 현장검증을 벌였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제기한 윤석열 검찰총장의 부당 사용 의혹은 확인하지 못했다. 오히려 법무부가 근거도 없이 특활비를 쓰고 있다는 새로운 논란만 낳았다.

추 장관 말과 달리 서울중앙지검 16% 지급 #차제에 법무부 받아 쓴 10억원 용처 밝혀야

발단은 지난 5일 국회 법사위에서 여당 의원들이 “검찰총장이 자신의 측근이 있는 검찰청에 특활비를 많이 주고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준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추 장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울중앙지검에는 특활비를 내려보내지 않아 수사팀이 고충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답했다. “총장이 주머닛돈처럼 쓴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어 6일에는 윤 총장의 특활비 배정과 집행 관련 내역을 보고하라고 대검 감찰부에 지시했다.

검찰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특활비로 조달한 돈 봉투를 뿌린 사건으로 구설에 올랐다. 이번에도 의혹이 사실이라면 감찰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 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 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고, 누군가 책임도 져야 한다.

하지만 검증에서 의혹을 확인할 근거는 나오지 않았다. 상당수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중앙지검에는 올해 전체 검찰 특활비의 16%가량이 지급됐다. 2018년과 지난해에 지급된 것과 비슷한 비율이다. 여당 의원들은 총액 기준으로 많이 줄었다고 주장하나 전체 특활비가 매년 삭감됐기 때문이다. 대전지검에도 평소와 비슷한 3% 수준이 지급됐다고 한다. 최근 시작한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수사를 독려하기 위해 대전지검에 특활비를 많이 줬다는 의혹도 근거가 없는 추측이었다.

이쯤 되면 추 장관과 여당 의원들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의원들로서는 예산 사용을 감시한다는 명분이 있다. 하지만 소문만 듣고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순수한 의도로 보기 어렵다. 특히 검찰이 월성원전 관련 압수수색을 한 직후여서 수사에 압력을 넣으려 한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추 장관은 본인이 관할하는 조직에 대한 의혹인 만큼 신중히 조사하고 답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불과 며칠 만에 허위로 드러날 의혹에 대해 주저없이 동조했다. 검찰총장을 몰아낼 수 있다면 중상모략도 괜찮다는 것인가.

차제에 법무부의 특활비 사용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검찰에 특수활동비를 배정하는 것은 기밀이 요구되는 수사에서 현금 쓸 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수사도 하지 않는 법무부가 왜 10억원이 넘는 돈을 해마다 받아 쓰는지 꼭 밝혀야 한다. 여당 측에선 “추 장관은 개인적으로 쓴 것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야당은 “개인적으로 안 썼다는 증거는 없다”고 맞선 상태다. 어차피 법무부는 수사 관련 기밀은 없으니 세밀히 확인해야 한다. 또 법무부가 근거 없이 특활비를 받아 쌈짓돈처럼 쓰는 관행을 없애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