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 달다 6m 추락한 동생 뇌사" 의사 형 눈물의 청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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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오후 3시 10분쯤 부산의 한 특급 호텔에서 추락사고를 당한 손모(39)씨가 뇌사상태에 빠졌다. 사진 가족 제공

지난달 30일 오후 3시 10분쯤 부산의 한 특급 호텔에서 추락사고를 당한 손모(39)씨가 뇌사상태에 빠졌다. 사진 가족 제공

“일주일에 3번씩 당직 서느라 집을 자주 비웁니다. 그런 저 대신 아빠처럼 제 자식을 돌봐주던 착한 동생이 뇌사 상태에 빠졌습니다.”

지난달 30일 부산 특급호텔서 현수막 설치 도중 리프트서 추락 #형 “안전관리 허술해 사고”…호텔 “행사업체가 현수막 위치 바꿔”

 흉부외과 전문의 손모(41)씨가 자신의 동생이 당한 사고와 관련해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며 한 말이다. 손씨 동생(39)은 지난달 30일 오후 3시 10분쯤 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한 특급 호텔에서 현수막 설치 작업을 하던 중 리프트가 통째로 넘어지는 바람에 6m 높이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호텔 연회장에 놓여 있던 테이블에 머리를 부딪쳐 중상을 입었다.

 손씨는 5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호텔 측이 용도에 맞지 않는 리프트를 제공해 동생이 사고를 당했고 안전요원도 배치하지 않아 사후 조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런데도 호텔 측은 사고 발생 6일째 아무런 연락조차 없다”고 했다.

 손씨가 동생의 사고 소식을 들은 건 지난달 30일 오후 4시쯤. 회진을 돌던 중 간호사에게 “동생이 크게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손씨는 곧장 해운대백병원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귀와 코에서 피가 나는 동생을 보고 직감했습니다. ‘뇌압이 높아 머리로 피가 흐르지 못하구나. 뇌사 상태에 빠지겠구나’라고요.”

 뇌부종으로 뇌 손상이 심해진 동생은 5일 현재 자가호흡이 없어 인공호흡기로 치료 중이다. 손씨는“부모님은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있지만, 의사인 저는 마음의 결단을 내릴 때가 된 것을 안다”며 “장기손상이 되기 전에 장기이식 여부를 부모님과 결정해야 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동생은 결혼도 하지 않고 부모님을 모시면서 매일 집으로 찾아오는 조카들을 제 자식처럼 돌봐줬다고 한다. 손씨는“의대 입시 준비에, 의사 면허증 시험 준비로 동생을 제대로 돌봐준 적이 없다”며 “전문의가 된 뒤에도 일이 바빠서 동생은커녕 가족조차 돌볼 시간이 없었다. 장남과 아빠 노릇을 못하는 저를 대신해주던 착한 동생이 이런 사고를 당해 억울하다”며 울먹였다.

지난달 30일 오후 3시 10분쯤 부산의 한 특급 호텔에서 현수막 설치작업을 하던 손모(39)씨가 리프트가 넘어지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진 부산경찰청

지난달 30일 오후 3시 10분쯤 부산의 한 특급 호텔에서 현수막 설치작업을 하던 손모(39)씨가 리프트가 넘어지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진 부산경찰청

 사고가 발생한 지 5일이 지나도 호텔 측에서 연락이 오지 않자 손씨는 지난 4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렸다. 그는 “호텔 측에서 그 흔한 위로의 말도 하지 않는다”며 “동생의 억울한 사고에 대한 진상규명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손씨는 사고의 1차 책임은 호텔 측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호텔 측이 제공한 리프트는 작업자 2명이 가로 7m, 세로 5m짜리 대형 현수막을 설치하기에는 부적절한 장비”라며 “게다가 호텔 직원이 연회장에 테이블을 먼저 설치하는 바람에 리프트 바닥에 안전 지지대를 설치할 공간조차 없었다”고 안전관리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호텔 측에서 안전요원을 배치하지 않아 사고 발생 직후 제대로 된 사후 조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부산 특급 호텔에서 추락사고를 당한 손모(39)씨의 형이 지난 4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청원 글을 올렸다. 사진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지난달 30일 부산 특급 호텔에서 추락사고를 당한 손모(39)씨의 형이 지난 4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청원 글을 올렸다. 사진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호텔 측은 연회장을 대관한 행사업체 측에서 현수막 설치 위치를 바꾸면서 사고가 났다는 입장이다. 해당 호텔 관계자는 “연회장 정면에는 현수막을 부착하고 올리는 걸이대가 있어 리프트를 타지 않아도 된다”며 “행사업체가 사고 당일 걸이대보다 더 큰 현수막을 갖고 와 급하게 현수막 위치를 측면으로 바꿨다. 행사업체 요구에 따라 리프트를 빌려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리프트 바닥에 안전 지지대(아웃트리거)를 설치한 뒤 작업해야 하는데 작업 편의상 안전 지지대로 고정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며 “호텔은 장소를 대관해줬을 뿐이고 하청 업체 안전관리 책임은 행사업체에 있다”고 주장했다.
 호텔 측은 경찰 수사에 따라 대처 방안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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