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대여섯마리가 짖어댔다, 탐정 눈 번쩍 뜨게한 '수상한 신호'

중앙일보

입력 2020.10.02 10:00

업데이트 2020.10.02 12:57

지난달 14일 충북 청주의 한 야산에서 탐정 김윤환(29)씨, 민경용(29)씨, 오영림(28)씨가 수색작업을 진행하는 모습. 김현정 인턴

지난달 14일 충북 청주의 한 야산에서 탐정 김윤환(29)씨, 민경용(29)씨, 오영림(28)씨가 수색작업을 진행하는 모습. 김현정 인턴

"어, 여긴 것 같다! 흙을 파놓은 흔적이 있는데요?"

지난달 14일 충북 청주시의 한 야산. 나뭇가지로 땅바닥 이곳저곳을 찌르던 민간조사기업 '블랙커'의 김윤환(29) 대표가 소리 쳤습니다. 근처에는 매섭게 짖는 개 대여섯 마리가 주인 없는 땅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밀실] <48화> '한국형 탐정'

김 대표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그는 사기범이 교도소에 들어가기 직전 야산에 은닉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법자금 4억원의 행방을 쫒고 있었습니다. 김 대표의 직업은 민간조사사입니다. 우리에겐 탐정이란 단어로 더 친숙하죠. 이날 하루, 김 대표는 어떤 일을 했을까요.

※어느 사립탐정의 하루, 자세한 내용은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지난 8월 5일부터 우리에서도 탐정이란 이름을 걸고 조사 활동을 하는 게 공식적으로 가능해졌습니다. 2018년 6월 헌법재판소가 탐정 명칭 사용이 가능하다고 판결한 데 이어 올 2월 국회에서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죠.

사실 아직 '공인 탐정법'이 제정된 건 아니라 탐정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습니다. 자격증 없이 탐정 활동이 가능하다는 건데, 때문에 일각에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죠. 탐정으로 활동하는 분들 중엔 전문성을 위해 민간조사사 자격증(PIA)을 수료한 경우도 있습니다.

법의 테두리에 들어온 탐정의 활동은 어떨지, 밀실팀이 이들의 하루를 따라가 봤습니다.

'불법자금' 찾으려 드론, 열화상 카메라 활용

지난달 14일 충북 청주의 한 회의실에서 탐정 김윤환(29)씨, 민경용(29)씨, 오영림(28)씨가 이날 진행할 업무에 대한 전략작전회의를 진행중인 모습. 김현정 인턴

지난달 14일 충북 청주의 한 회의실에서 탐정 김윤환(29)씨, 민경용(29)씨, 오영림(28)씨가 이날 진행할 업무에 대한 전략작전회의를 진행중인 모습. 김현정 인턴

#파일1: 오후 12시 충북 청주의 한 회의실.

“오늘은 사기범이 불법 자금을 야산 어디에 묻어뒀는지 위치파악을 구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드론 띄워서 한번 산을 훑어보는 식으로 하죠”

사설탐정 김윤환 씨, 민경용(29)씨, 오영림(28)씨가 모여 머리를 맞대고 열띤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이날 조사중인 사건은 수사기관의 의뢰로 사기범 A씨가 숨긴 불법자금의 위치를 파악하는 일인데요. A씨가 교도소에 들어가기 직전 야산과 집 근처에 숨겨둔 돈이라고 해요. 조사에 착수한 지 2개월가량 지나, 거의 '윤곽'이 잡힌 상태라네요.

회의에서 민씨는 "주변에 무서운 개들이 있으면 무엇을 숨겨놨을 가능성이 있으니 일단 의심부터 해보자"는 의견을 냈습니다. 김씨는 "4억가량을 5만원권으로 뽑았을 경우 그리 부피가 크지 않을 것"이라며 "김장 비닐로 싸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추측을 내놨고요.

지난달 14일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 단지 앞에서 탐정 김윤환씨가 사기범이 가족과 내통할 경우를 고려해 지하주차장에서 잠입수사를 진행중이다. 백경민

지난달 14일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 단지 앞에서 탐정 김윤환씨가 사기범이 가족과 내통할 경우를 고려해 지하주차장에서 잠입수사를 진행중이다. 백경민

#파일2: 오후 1시 30분 청주의 한 아파트 단지의 주차장.

산으로 가기 전, '탐정단'은 A씨의 집부터 찾아 갔습니다. 야산에 묻힌 돈관리를 가족이 대신해주고 있을 경우를 고려한 겁니다. 그래서 현장조사에 앞서 A씨 집에 사람이 있는지부터 확인에 나섰습니다. 집에 사람이 있다면 탐정 3명이 수월하게 야산을 수색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좀 더 조심해야할 필요가 있죠.

잠복근무 끝에 알아냈던 A씨의 차량이 주차장에 있는 지부터 확인했습니다. 차가 있다면 가족들은 집에 있거나 집근처에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주차장에서 차를 발견한 탐정들은 아파트 현관에 들렸습니다. 전기 계량기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계량기의 숫자가 달라지면 집안에 사람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계량기 수치 변화는 없지만 차량이 있는 것으로 봐서 김씨는 “가족들이 집 근처에 외출 중인 것 같다”고 했는데요. 이어 탐정들은 차를 타고 약 15분 거리의 야산으로 향했죠.

지난달 14일 충북 청주의 야산을 수색하기 전 탐정 김윤환씨는 넓은 지역을 효율적으로 돌아보기 위해 드론을 띄우고 있다. 백경민

지난달 14일 충북 청주의 야산을 수색하기 전 탐정 김윤환씨는 넓은 지역을 효율적으로 돌아보기 위해 드론을 띄우고 있다. 백경민

#파일3: 오후 3시 청주의 한 야산.

“여기 지금 화면을 보면 비닐하우스가 있는 것 같은데요?”

산 아래서 20~30분가량 드론을 조종하던 오영림 씨가 조작기 화면에서 흰 비닐하우스를 발견합니다. 나무가 우거진 야산이라 인적이 드문 곳인데, 유일하게 사람의 흔적이 보이는 장소였죠.

탐정들은 곧장 목표 장소를 향해 산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도착하니 검은 개 대여섯 마리가 무섭게 짖고 있었는데요. 회의 때 말했던 그 '수상한 신호'입니다.

텃밭과 근처 비닐하우스를 물색하기 전 김 씨는 열화상 카메라를 들고 비닐하우스를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사람이 안에 있는지 확인을 미리 해보는 것인데 지금 카메라에 나타나는 건 없다"고 설명하더군요.

 지난달 14일 충북 청주 한 야산에서 발견된 의문의 비닐하우스 근처에 있는 개 모습. 김현정 인턴

지난달 14일 충북 청주 한 야산에서 발견된 의문의 비닐하우스 근처에 있는 개 모습. 김현정 인턴

“여긴 것 같다!”
주인없는 작은 비닐하우스 주변을 수색하자 누군가가 파놓은 듯한 흔적이 있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근처엔 땅을 파냈을 법한 막대기 여러 개가 꽂혀 있었고요. 흙에 막대기를 꽂자 단단한 다른 바닥과는 달리 쉽게 막대기가 들어갔습니다. 4억가량의 돈을 5만원권으로 바꿨을 때의 부피를 고려하며 땅바닥에 이리저리 막대기를 꽂아보기도했죠.

돈이 묻힐 만큼의 깊이로 막대기가 꽂히자 탐정들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김씨는 수사기관에 보낼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는데요. 의심 장소를 파헤치지 않고 그대로 사진과 함께 수사기관에 넘기기로 합니다. 수사기관에서 직접 수색하게 된다고 하네요.

지난 14일 충북 청주의 한 야산에서 발견된 의심장소. 해당 장소는 수사기관에 넘겨 수색을 진행할 예정이다. 김현정 인턴

지난 14일 충북 청주의 한 야산에서 발견된 의심장소. 해당 장소는 수사기관에 넘겨 수색을 진행할 예정이다. 김현정 인턴

심부름센터? 흥신소? 가장 많은 의뢰는 '추적'

탐정업체는 주로 어떤 일을 맡을까요. 가장 많이 들어오는 의뢰는 '추적'입니다. 이혼 소송을 하기 전 증거 자료 수집이 가장 많다고 해요.

다음으로 많은 게 산업스파이 관련입니다. 회사 기밀을 빼돌리는 것으로 의심되는 회사 직원들을 추적하는 거죠. 이 밖에도 실종가족 찾기도 많은 편이라고 해요. 김 씨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자식을 빼내 와 달라는 의뢰도 있었다"며 "실제로 광신도인 척 들어가 딸을 설득해 집에 돌아오라 설득했던 적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14일 탐정 민경용씨가 이 날 진행될 업무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김현정 인턴

지난 14일 탐정 민경용씨가 이 날 진행될 업무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김현정 인턴

일단 탐정 활동의 합법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합법과 불법을 가르는 경계선이 모호한 편이라고 탐정들은 말했습니다. 이번 개정안 통과로 탐정이 실종 가족을 찾는 것은 합법이 됐습니다. 하지만 다른 업무는 가이드라인이 없다시피한 상황이라고 해요.

특히 의뢰가 많은 '이혼 증거 수집'도 어디까지가 합법인지 애매한 경우가 많다고 해요. 사실 불륜의 증거는 배우자를 미행하여 얻는 경우가 많은데, 미행하는 행위는 상황에 따라 합법·불법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이죠.

인식은 아직도 '불법' 가까워…"법 근거 마련" 목소리 

매년 증가하는 민간조사사(PIA) 자격증 취득자에서 보듯 탐정을 하려는 사람은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김 대표도 "처음 탐정업을 시작할 때 심부름센터로 정도로 여기거나 층간소음을 해결해 달라는 등 불법적인 의뢰가 많았다"고 전했습니다.

일각에선 탐정의 활동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해 공권력을 보완할 수 있는 역할을 하도록 하자는 제안이 나옵니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부 교수는 "탐정이 합법적 범위 안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명확하고 구체적인 근거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탐정을 공인하는 제도를 만들고 탐정들이 경찰과 공조해 경찰력이 미처 미치지 못하는 사건을 해결하는 역할을 주자는 거죠.

한국판 셜록 홈즈를 꿈꾸는 탐정들은 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탐정 제도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까요?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최연수·박건·윤상언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영상=백경민, 김현정·이시은 인턴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