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명 모이는 국회 본회의는? 화상회의 법적 근거 없어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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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날(19일)부터 2단계로 격상되면서 정기국회를 앞둔 국회도 비상이 걸렸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는 실내에서 50인 이상이 대면으로 모이는 집합·모임·행사를 금지한다. 이에 따르면 여야 국회의원 300명이 모이는 국회 본회의도 금지 대상이다. 당장 다음 달 1일로 예정된 21대 국회 첫 정기국회 개회식마저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제21대 국회 개원식이 열린 지난달 16일 국회 본회의장에 출석한 여야 국회의원들이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제21대 국회 개원식이 열린 지난달 16일 국회 본회의장에 출석한 여야 국회의원들이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2019년도 결산 심사를 위해 개회 중인 8월 임시국회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회 예산결산특위는 오는 24일부터 전체회의를 연달아 열고 각 부처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종합정책질의·부별심사를 진행한다. 그런데 여야 예결위원은 정성호 위원장을 포함해 총 50명(18일 기준)이다. 여기에 정부 측 관계자까지 포함하면 현행으로는 방역당국이 정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를 지키기 어렵다.

‘국회 코로나19 대응 TF’(단장 박선춘 국회사무처 기획조정실장)가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유력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원격·화상 본회의는 아직 법적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행 국회법상 회의를 개의할 수 있는 의사정족수는 재적의원(300명) 5분의 1(60명), 어떤 안건에 대한 의결을 위해선 재적의원 과반 출석(151명)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0회국회(임시회) 제8차 본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이 산회가 선포되자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0회국회(임시회) 제8차 본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이 산회가 선포되자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뉴스1]

투표방법도 현행법상 원격 방식으로 대체할 수 없다. 국회의장은 표결할 안건의 제목과 표결 결과를 ‘의장석’에서 선포해야 한다(국회법 110조·113조). 국회의원은 표결 시 회의장에 있지 않으면 표결에 참가할 수 없다(111조). 이는 과거 기습적으로 회의장을 옮겨 날치기로 법안을 처리하던 악습을 청산하기 위해 도입된 조항이다.

기명투표(헌법개정안 등)·무기명투표(국회 내 각종 선거 또는 인사 안건 등)는 투표함을 폐쇄할 때까지 표결에 참가할 수 있어 50명 미만씩 릴레이 방식으로 투표한 뒤 퇴장하는 게 가능하지만, 일반 안건은 의석에서 단말기로 투표해야 한다. 다만, 릴레이 방식 역시 의결 때마다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드나들어야 한다는 게 단점으로 꼽힌다. 본회의 대정부질의나 예결위 종합정책질의는 질의할 의원만 순번에 따라 회의장에 입장하고 질의를 마친 뒤엔 다음 질의자와 ‘바톤 터치’를 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며 회의 진행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며 회의 진행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외국 의회는 어떨까. 대표적인 사례로는 코로나19 종식 때까지 한시적으로 원격 출석·표결이 가능토록 한 영국이 꼽힌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영국 하원은 임시의사규칙을 채택, 이른바 ‘병행의사절차(hybrid proceedings)’를 도입하고 대정부질의, 법안 발의·심사·의결 등의 출석 참여와 원격 참여를 모두 인정하고 있다. 미국 하원도 비슷한 의사규칙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공화당 반대로 무산됐다. 다만, 코로나19 확진 판정이나 자가격리 등으로 부득이 직접 투표를 할 수 없는 의원의 경우 대리투표자를 지명할 수 있도록 했다. 프랑스·캐나다·독일 하원 등은 여야 협의를 통해 의사정족수를 완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회 관계자는 “미국의 대리투표제는 국민 정서상 국내에 도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국회법을 정비해서 원격회의를 병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국회사무처는 지난 7월 3차 추가경정예산에 반영한 ‘상임위 회의장 비대면 회의체계 구축’(4억5000만원) 예산을 활용해 시스템 구축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본회의의 경우 국회법에 “의장은 감염병 발병 상황으로 의결정족수 이상의 의원이 회의장에 출석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경우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합의하여 원격영상회의 방식으로 본회의를 개의할 수 있고, 원격영상회의에 출석한 의원은 동일한 회의장에 출석한 것으로 본다”는 내용의 ‘원격영상회의’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내 정부 기관 관계자들의 업무공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조치로 책상 등 집기류 일부가 철거돼 있다. [연합뉴스]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내 정부 기관 관계자들의 업무공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조치로 책상 등 집기류 일부가 철거돼 있다. [연합뉴스]

다만, 국회법 개정은 일러도 정기국회 개회 후에야 가능할 전망이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본회의를 현행대로 진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본회의장 소독 등 방역 작업을 더 철저히 하고 있다”며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를 전제로, 본회의 의사일정을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될 때까지 잡지 않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박병석 국회의장과 회동한 뒤 여야가 주도하고 국회사무처가 지원하는 ‘코로나19 대응팀’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국회 내 코로나19 상황 일일점검을 비롯해 방역 대책 및 사후조치를 강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민수 국회의장 공보수석은 설명했다. 한 수석은 “국회 내 영상회의가 가능한 사무실이 3곳 정도 있다. 8월 중에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여야 모든 정당이 의원총회 등 회의를 원격으로 하는 방안을 지원하고, 국회 본회의장과 상임위 회의장에는 1인용 칸막이를 설치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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