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노동경찰제, 부동산 백지신탁제, 수술실 CCTV 의무화, 법정 최고 이자율 10% 제한, 공매도 제도 개선….
최근 두 달여간 이재명 경기지사가 제안하고 더불어민주당이 이어받은 입법 과제들이다. 각각 윤준병(노동경찰제)·신정훈(부동산 백지신탁제)·김남국(수술실 CCTV, 이자제한법)·박용진(공매도 제도 개선) 의원 등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거나 검토 중이다.
이낙연 민주당 의원을 제친 이 지사의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가 입법 영향력에서도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갤럽이 지난 11~13일 자체 실시한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 지사(19%)는 이 의원(17%)을 오차범위(±3.1%포인트) 안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사 1위는 처음이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지난달 16일 대법원 판결로 허위사실공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란 족쇄를 벗어 던진 이 지사는 여당 의원들과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경기도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월 1, 2회 개최하는 정책토론회를 계기로 오·만찬을 꾸준히 가지면서다. 당초 지난 4·15 총선 뒤 경기 지역 당선인들부터 공관에 초청하려 했지만, 코로나19 확산세를 고려해 이 같은 소규모 소통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이 지사가 만나는 이들의 범위는 정성호·김영진·이규민 등 이른바 ‘이재명계’ 이외 경기권 의원 전반으로 확장하는 중이다. 소재·부품·장비 육성방안 정책토론회가 열린 지난달 23일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가진 만찬에는 김병욱·홍기원·민병덕 의원 등 10여 명이 참석했고, 지난 13일 공정조달 제도 도입 정책토론회 직후에도 임종성·송옥주·임오경 의원 등 12명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한 참석자는 “25일 열릴 기본주택 정책토론회 이후에도 비슷한 규모로 모여 이 지사와 식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선명하고 강한 정책 제안에 여론이 반응하자 2017년 19대 대선 경선을 거치며 대립각을 세워 온 친문 진영 일각에서도 이 지사에 대한 호평이 나온다. 친문 성향의 한 의원은 “이 지사의 정치 스타일에 부정적이었는데, 경기지사 취임 후 정책이 참 선명하고 굉장히 일을 잘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 지사에 대한 친문 지지층의 뿌리깊은 비토가 이번 대선 과정엔 과거와 같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다만 이 지사와 친문 지지층 사이엔 아직 정서적 괴리감이 남아 있는 데다, 수도권과 대구·경북을 제외하면 그의 지역별 지지세가 고르지 못하다는 점은 약점으로 꼽힌다. 이 지사 특유의 직선적 스타일이 현 정부·여당의 기조와 다소 엇나갈 경우엔 당내 분열 양상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도 있다. 최근 두 차례(지방선거·총선)의 전국 단위 선거에서 민주당은 ‘원팀’ 전략을 구사해 승리했다. 여권 핵심 인사는 “책임 있는 집권여당으로선 그가 제시하는 정책 아이디어를 비판 없이 여론만 보고 수용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공개적인 견제도 관찰됐다. 이 지사가 지난 7일 여야 국회의원 전원에게 법정 최고이자율 10% 제한 입법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자, 송영길·전해철 의원 등이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 의견을 냈다. “최고이자율을 10%로 내리면 제도권 금융기관의 신규대출이 막혀 저신용자들이 불법 사금융에 내몰리게 된다”는 게 골자다. 친문 성향의 한 의원은 “이 지사의 포퓰리즘적 주장이 자칫 집권여당을 불안하게 보게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이 지사가 경기도 현안에만 집중했으면 한다”고 했다.
이 지사의 지지율 1위에 대해서도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수도권 중진 의원은 “이낙연 대세론이 많이 약화했을 뿐 이 지사가 급상승한 게 아니다”라며 “대선을 1년 반 남겨 둔 시점의 지지율은 의미가 없다. 이 지사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지난 16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서 “중도 보수가 이 지사를 지지한다고 할 때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싫어요’ ‘우리는 추미애 장관이 싫어요’란 의사를 표명하는 것이지, 지지율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실제 범여권 잠룡만 대상으로 한 여러 여론조사에서 이 지사가 이낙연 의원을 앞선 결과는 아직 없다.
김효성·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