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찰이 신상공개까지 한 '강간범'…검찰 "강간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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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약칭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으로 구속된 A(38)씨가 지난달 3일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약칭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으로 구속된 A(38)씨가 지난달 3일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강간·유사강간 등의 혐의로 신상공개를 결정한 A씨(38)에 대해 검찰이 성폭행은 없었다는 처분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A씨가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물을 구매하고 미성년자와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며 신상 공개를 결정했다. 하지만 검찰은 강간과 유사강간은 없었고 미성년자 성매수 범죄사실 중 일부만 입증된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강간·유사강간 혐의없음 처분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춘천지검은 A씨의 강간·유사강간 혐의 전부와 미성년자 성매수 혐의 중 일부에 대해 지난달 21일 최종적으로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A씨의 불기소 결정문에 “이 사건 당시 피해자들이 A씨와 성관계를 가진 사실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적었다.

유사강간 혐의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폭행 또는 협박 여부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만 진술하고 있다”며 “객관적인 증거도 발견할 수 없다”고 불기소 이유를 설명했다. 검찰은 이에 따라 A씨를 n번방에서 성착취물을 구매하고 미성년자와 '조건만남'을 하면서 성관계 장면을 촬영한 혐의 등으로만 기소했다. 유포는 없었다고 한다.

경찰은 강간·유사강간 혐의 신상공개 결정 

이에 앞서 경찰은 A씨에 대해 강간·유사강간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신병 확보 이후 경찰은 A씨가 강간·유사강간 등의 성폭행을 저지른 만큼 신상정보를 공개하기로 방침을 세우고 지난달 1일 신상정보 공개심의위원회(심의위)를 개최했다. 지방경찰청별로 설치된 심의위는 경찰 위원 3명과 변호사, 교수, 정신과 의사 등 외부 인사 4명으로 구성된다.

심의위는 당시 경찰의 주장대로 A씨의 미성년자 강간 혐의가 입증됐다고 보고 신상공개를 결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황이었던 만큼 경찰 단계에서는 핵심 혐의였던 강간·유사강간이 입증됐다고 보고 신상공개를 결정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A씨 측이 법원에 신상공개 집행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실제 공개는 이뤄지지 않았다.

“강간범 낙인 찍힐 뻔…제도 정비해야”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안을 계기로 “신상공개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는 “신상이 한 번 공개되면 그때 당시 받은 범죄 혐의와 함께 낙인이 찍혀버린다”며 “부득이하게 공개가 필요할 경우 지금처럼 경찰이 포함된 지방청마다 따로 있는 심의위가 결정할 게 아니라 전문성이 강화된 위원회를 별도로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청 인권위원회는 최근 신상공개 기준을 명확하고 엄격하게 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청마다 심의위가 따로 구성돼 신상공개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신상공개 이후에 무혐의 또는 무죄로 판명 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논의됐다고 한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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