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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거래세 낮춘 게 서민 감세?…세수 구멍 메우려 '부자 증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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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2020년 세법개정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2020년 세법개정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이번 세법개정안 핵심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타격을 입은 경제 취약층 지원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부족한 세수를 메우냐다. 정부가 잡은 방향은 서민 감세, 부자 증세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번 개정안으로 서민·중산층(총급여 7000만원 이하)과 중소기업은 1조7688억원의 세 부담을 던다. 대신 고소득층·대기업은 추가로 1조8760억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이 둘을 반영한 총 세수효과는 676억원으로 예년과 큰 차이가 없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조세 중립적으로 세법개정안을 마련했다"며 "증세논쟁이 없기를 바란다"며 공평 과세를 강조했다.

감세 대부분이 증권거래세 효과

계층별 세부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계층별 세부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러나 세부항목을 따져보면 서민·중산층의 세 부담이 정말 줄었는지 의문이다. 기재부가 밝힌 서민·중산층 감세 효과 1조7688억원 중 약 1조1000억원은 증권거래세 인하에서 나왔다. 서민·중산층 감세 대부분이 증권거래세 인하 효과인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소득자료를 기준으로 고소득자로 분류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낸 증권거래세를 나눴다"며 "증권거래세 감소액 2조4000억원 중 법인·외국인 몫을 뺀 4분의 3이 서민·중산층에게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증권거래세는 주식을 사고 팔 때 내는 세금이기 때문에 서민·중산층의 경제 부담을 덜어주려 인하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증권거래세 인하는) 단기 주식거래를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며 "주식거래를 안 하는 서민도 상당히 있다는 점에서 서민을 도와주는 것과는 상관없다" 말했다.

증권거래세 인하를 빼면 주요 세법개정안 중 서민·중산층과 중소기업 세 부담을 덜어줬다고 볼 수 있는 항목은 부가가치세 간이과세 기준 상향과 중소기업 특허 비용 세액공제 정도다. 저소득 근로자 지원책인 근로장려세제 같은 일자리 사업 등은 대부분 기존 사업을 연장하는 데 그쳤다.

소득·집·주식 부자, 3조3000억원 증세

반면 부자 증세는 확실했다. 우선 연간 5000만원 이상 주식양도소득 과세로 1조5000억원의 세금을 더 걷는다. 다주택자의 종합부동산 중과세 세율을 높여 9000억원의 추가 세수도 확보했다. 또 이번에 10억원 넘는 소득에 대한 45% 최고세율을 신설해 9000억원 증세 효과도 봤다. 이렇게 부자 증세로만 걷히는 추가 세금이 3조3000억원 수준이다.

정부는 사회적 연대를 강조한다. 코로나19로 인해 피해를 본 계층을 지원하고 소득 재분배를 강화하기 위해 선별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다. 홍 부총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자영업자·중소기업 및 저소득층이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사회적 연대와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연도별 세수효과.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연도별 세수효과.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회적 연대가 아니라 증권거래세 인하로 인한 세수 감소분을 메우기 위해 선별 증세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권거래세 인하로 줄어드는 세수는 5년간 2조3801억원이다. 같은 기간 소득세 증가분 2조2310억원을 넘어선다. 이 때문에 애초 정부는 거래세를 인하하는 대신 2000만원 이상 주식 수익에 양도소득세를 물려 부족분을 메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동학 개미' 반발에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양도세 비과세 한도를 상향 조정(2000만원→5000만원)했고, 세입 구멍을 메우기가 어려워졌다. 소득세율 45% 구간의 신설은 고육지책이었던 셈이다.

또 고통 분담 차원의 부자 증세가 필요했다면 사회적 합의를 거쳤어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3년 전에도 소득세율 개편을 했고 이후 추가 조치가 있을 거라고 밝히지 않았다"며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바로 과세구간 만들고 소득세율을 올린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세종=김남준·임성빈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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