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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사랑, 은지가 자장면 먹고 싶다 할 때 같이 먹는 것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27)

은지는 토요일을 기다린다. 토요일엔 은지가 좋아하는 딸기 빙수를 먹고, 바닷가 앞에 있는 놀이터에 나가고, 은지 옷을 사기도 하는 날이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잘 다니지 못하지만 그전엔 토요일마다 제주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놀았다. 실컷 놀다가 저녁때가 돼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면 은지는 간절한 눈빛으로 꼭 한 군데 들렀다 가자고 한다. 동네 장난감 마트다.

“엄마, 한 번만 보고 가요! 예?” 그 눈빛이 너무 간절해서 고개를 끄덕인다. 은지랑 장난감 마트에 가면 입구에서부터 은지가 앞장선다. 새로운 장난감이 뭐가 있나 살펴보고, 체험 부스에서 체험하고, 그걸 일일이 설명해 준다. 그런 은지를 보고 있으면 빙긋이 웃게 된다.

언제 이렇게 커서 자기 생각을 말하는 건지, 얼마나 많은 생각이 은지 머릿속에 있길래 끝도 없이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건지. 매일 보는데도 매일 새롭다. 신기하고 기특하다.

장난감 마트에서 한참 구경을 하고 집으로 가자고 하면, 은지는 또 아쉬워한다. ‘조금 밖에 못 놀았다’고 입술을 쭉 내민다. 많이 논 것 같은데 은지에겐 늘 부족하다. 놀기 위해 태어난 아이처럼 넘치는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서 놀려고 한다.

2019년 9월 알파카 목장에서 은지.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잘 다니지 못하지만 그전엔 토요일마다 제주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놀았다. [사진 배은희]

2019년 9월 알파카 목장에서 은지.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잘 다니지 못하지만 그전엔 토요일마다 제주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놀았다. [사진 배은희]

은지 모습을 보다 보면 예전에 첫째, 둘째 아이를 키웠던 게 떠오른다. 만약 그때 같았으면 ‘이제 시간이 됐으니까 집에 가야 한다’고 혼냈을 거다. 그래도 고집을 부리면 등짝을 찰싹 때렸을 거다.

그때는 열정만 가득한 엄마였다. 아이들의 욕구보다는 내 틀에 맞춰 키우려고 했었다.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두 아이가 많이 힘들었을 거다.

은지를 키우는 지금은 좀 느긋해졌다. 은지 욕구를 먼저 살피고 거기에 맞춘다. ‘그래 더 놀아라. 집에는 좀 늦게 가도 되지’ 하는 식이다. 둘째 딸 어진이는 이런 모습이 할머니 같다며, 깐깐했던 우리 엄마는 어디 갔느냐고 묻는다.

그러고 보니 은지를 키우면서 내가 바뀌었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사사건건 구분 짓고 그 틀에 맞춰 키우려고 했던 내 모습은 이제 느긋한 할머니처럼 허용적이 됐다.

“아이고, 괜찮아. 그런 건 은지가 하고 싶다는 대로 해도 돼.”
이젠 은지의 욕구가 먼저다. 가끔은 늦게까지 놀아도 괜찮다. 은지가 새로운 장난감을 체험하면서 알아가듯이 은지의 일상도 경험하면서 배우는 게 있을 테니까. 그게 은지에게 더 자극될 테니까.

지금은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를 혼내면서 집으로 데리고 오지 않는다. 등짝을 찰싹 때리면서 위협하지도 않는다. 대신 ‘10분만 더 놀고 가자’, ‘긴 바늘이 6에 가면 그때 집으로 가자’ 하면서 조율한다.

은지의 입장에서, 은지의 상황에서, 은지를 먼저 살피는 게 사랑일 거라 짐작해 본다. 위탁가족으로 살면서 체득하는 이 유기적인 사랑이 우릴 변화시키고 있다. [사진 pixabay]

은지의 입장에서, 은지의 상황에서, 은지를 먼저 살피는 게 사랑일 거라 짐작해 본다. 위탁가족으로 살면서 체득하는 이 유기적인 사랑이 우릴 변화시키고 있다. [사진 pixabay]

서로의 감정을 읽어줄 때 관계도 깊어진다. 나는 은지를 통해 그걸 배우는 중이다. 은지와의 관계가 그랬다. 내가 은지를, 은지가 나를 깊이 읽어줄 때 신뢰가 생겼고 사랑이 더해졌다.

처음 위탁가족이 되고, 생후 11개월이었던 은지를 품 안에 안고 오면서 ‘사랑’으로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게 뭔지, 나도 몰랐다. 사랑이란 게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니고, 그걸 가르치는 학교나 학원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사랑으로 키우고 싶었지만 사랑이 뭔지도 몰랐고, 내 안에도 사랑이 없었다. 그래서 더 막연했고, 그래서 더 흔들렸다. ‘더 좋은 위탁부모를 만날 수 있는데 내가 데려온 건 아닌가?’, ‘이게 내 이기심의 발단이라면 어떻게 돌이켜야 할까?’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다.

6년이 지난 지금. 어렴풋이 짐작해 본다. 사랑이란 은지가 자장면을 먹고 싶다고 할 때 같이 자장면을 먹는 것이라고. 사랑이란 은지가 장난감 이야기를 할 때 그래, 그래, 잘 들어주는 것이라고.

은지의 입장에서, 은지의 상황에서, 은지를 먼저 살피는 게 사랑일 거라고 짐작해 본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성경 속 활자로만 찍힌 사랑이 아니라, 위탁가족으로 살면서 체득하는 이 유기적인 사랑이 우릴 변화시키고 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결국 사랑이다. 열정만 앞섰던 내가 느긋해진 것도, 깐깐한 규칙을 고집하던 내가 허용적인 할머니처럼 바뀐 것도, 위탁가족으로 살면서 배운 사랑 때문이었다.

심하게 낯가리던 은지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어른들께 큰 소리로 인사하는 것도, 유치원에서 번쩍번쩍 손을 들고 발표하는 것도, 위탁가족 안에서 배운 사랑의 힘이라고 믿는다.

사랑, 그 막강함을 배우는 곳이 위탁가정이다.

가정위탁제도란?

가정위탁 홍보 포스터.

가정위탁 홍보 포스터.

친부모의 사정(질병·가출·이혼·학대·사망 등)으로 친가정에서 지낼 수 없는 자녀를 복지시설에 보내지 않고, 일반 가정에 맡겨 양육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시행되었다.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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