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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부모계약서 또 썼다…감사하다, 5년 더 은지엄마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25)

은지는 앞니가 숭숭 빠진 일곱 살 언니가 됐다. 삐뚤빼뚤 편지를 쓰고, 그림책도 읽고, 말도 야무지게 잘한다. 요즘은 출생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졌는지 자꾸 물어본다.

“엄마, 은지 낳아주신 엄마는 몇 살이에요?”
“음……, 스물여섯 살.”
“그럼, 언니네요!”
은지 생각에도 낳아주신 엄마는 언니에 가까운가 보다. 은지는 ‘낳아주신 엄마’와 ‘배은희 엄마’로 구분하면서 막연하게나마 가족관계를 그리는 것 같다. 얼마 전엔 또 물었다.

“엄마! 그럼, 아빠 한 명은 어디 있어요?”
“음……. 아주 멀리 있어서 지금은 만날 수가 없어. 은지가 어른이 되면 같이 만나러 가자!”
은지와 출생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여전히 아픈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계속해야 한다. 은지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은지의 보폭에 맞춰서……. 은지가 궁금해할 때마다 이야기를 나누고, 또 나눠야 한다.

은지공주 독사진. [사진 배은희]

은지공주 독사진. [사진 배은희]

“엄마! 은지는 엄마도 둘, 아빠도 둘이잖아요? 우리 (유치원)행복반 선생님한테 말했더니 선생님이 ‘좋겠다!’ 그랬어요.”
활짝 웃으며 자랑하는 은지를 품에 꼭 안았다.

“그래, 은지는 엄마도 둘 아빠도 둘이니까 두 배로 행복했으면 좋겠어!”
은지가 이 말을 이해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쯤, 우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위탁부모 계약서를 갱신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앞으로의 5년을 생각해 봤다. 은지는 초등학생이 될 테고, 사춘기가 될 테고. 지금보다 더 생각이 많아지고, 행동반경이 넓어질 것이다. 그땐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우리는 ‘가정위탁제도’를 통해 만났다. 평생 내 자식이 되는 입양이 아니라 ‘동거인’으로 만나 살고 있다. 가정위탁제도는 친부모의 이혼이나 사망, 수감, 장기입원 등…….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없을 때, 사회가 그 짐을 나누어지는 제도다.

친부모의 사정이 천차만별이니까 위탁기간도 집집마다 다 다르다. 짧게는 몇 개월부터, 길게는 10년 이상이 되기도 한다. 친부모는 그 기간 동안 아이를 맡기고, 건강과 상황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

은지의 위탁기간은 5년이었다. 그런데 그 기간이 지나도록 친부모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달에 위탁부모 계약을 갱신했다. 내 입장에선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앞으로 5년은 은지랑 더 지낼 수 있고 계약을 연장하고 또 연장하면서 성인이 될 때까지 같이 지낼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엄마! 왜 언니랑 오빠만, 엄마 뱃속에 있다가 낳아줬어요? 치…….”
은지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툴툴거렸다. 은지를 낳고, 안 낳고를 엄마가 선택할 수 있는 줄 안다. 언니, 오빠처럼 엄마 뱃속에 있다가 태어나고 싶은데 왜 은지만 가슴으로 낳았냐고 따지듯 물었다.

알파카 목장에서 은지랑.

알파카 목장에서 은지랑.

은지 말대로, 그걸 선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선택할 수 없는 관계라서 더 소중한 게 아닐까? 우린 5년에 한 번씩 위탁부모 계약서를 갱신하면서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을 생각해 보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니까.

은지야! 엄마는 은지를 뱃속에 품었다가 낳진 않았어. 아기였던 은지를 가슴에 꼭 안고 집으로 온 날, 그날부터 은지 엄마가 되기 시작했어. 그래, 언니랑 오빠처럼 엄마 배가 아프진 않았지.

하지만 은지가 ‘왜 뱃속에 있다가 낳아주지 않았냐?’고 물을 때, ‘엄마 가슴이 쭉 갈라지면서 은지가 태어났냐?’고 물을 때……, 그때마다 은지를 낳는단다. 가슴이 아리고 쑤시면서 은지를 낳아.

우리 은지가 크면 이해할까? 아니, 몰라도 괜찮아. 지금처럼 밝고 건강하게 커 주면 좋겠어. 엄마도 멋진 은지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게. 아프고 흔들려도 우리 같이 이겨내자. 사랑하고 축복해.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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