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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친부모에 학대 당한 창녕 소녀가 가고 싶다 한 곳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26)

믿을 수 없는 뉴스였다. 창녕에 사는 9세 소녀가 부모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집을 탈출했는데, 가고 싶은 곳이 ‘큰아빠 집’이었고, 그곳이 위탁가정이라는 말에 또 한 번 놀랐다. 아이의 뭉개진 손가락이며, 시퍼렇게 멍든 몸이 그동안의 시간을 대변하는 듯했다.

‘위탁가정?’
그 아이가 계속 위탁가정에서 지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6년째 위탁부모로 살고 있는 내 입장에선 이 부분이 가장 안타까웠다. 위탁부모는 친부모가 데려간다고 하면 무조건 보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서.

아이가 부모의 학대를 피할 수 있는 여러 장치가 있었는데, ‘친부모’나 ‘친가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앞으로도 이런 뉴스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 부분이 시정되지 않는다면 악순환은 계속될 것만 같다.

옆집에서 선물받은 그림책을 읽고 있는 은지. [사진 배은희]

옆집에서 선물받은 그림책을 읽고 있는 은지. [사진 배은희]

우리 은지의 경우도 그랬다. 처음 위탁부모 계약서를 쓸 땐 5년으로 계약했다. 그런데 계약기간이 지나도록 친부모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지난 4월에 계약을 갱신했다.

만약 은지 친부모가 무턱대고 데려간다고 했다면, 나는 아이의 소망이나 행복에 상관없이 보내야 했을 것이다. 위탁가정은 아이를 받아들이고, 함께 사는 것뿐이지 법적권한은 없으니까. 아이가 친가정으로 돌아갈 땐, 오직 친부모의 의사가 반영되니까.

가정위탁제도는 친부모의 특별한 사유(이혼, 질병, 수감 등)로 자녀를 양육할 수 없을 때, (일정기간) 위탁가정에 맡기는 제도다. 아이들이 시설보다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족을 경험하며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아동복지제도다.

창녕의 9세 소녀는 친엄마가 출산과 경제적 이유로 2년간 위탁가정에 맡겼다고 한다. 그리고 계약기간이 끝나면서 데려간 것 같다. 사실 가정위탁제도는 계약기간이 끝나면 갱신할 수 있다. 그렇게 만18세까지 위탁가정에서 지낼 수 있다. 창녕의 9세 소녀도 아이의 의사와 위탁부모의 의견을 반영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도 은지를 키우면서 은지 친가정의 소식을 종종 전해 듣는다. 그때마다 우리 은지가 나중에 그 집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지내게 될지 상상한다. 우리 집에 있는 게 훨씬 낫다고 단언할 수도 없지만, 친가정으로 돌아갔을 때 걱정되는 부분도 많다.

그림 그리는 은지.

그림 그리는 은지.

아이를 낳았다고 다 부모가 되는 건 아니다. 희생하고, 헌신할 때……, 가슴이 미어지며 아이를 품을 때……, 진짜 부모가 되어간다. 몸으로 낳았든 가슴으로 낳았든 얼마나 사랑으로 품느냐가 부모의 조건인 것 같다.

돌아보면, 생후 11개월이었던 은지를 만나고, 같이 밤을 새우고, 응급실에 달려가고, 가슴을 맞대고 잠들었던 시간이 나를 은지엄마로 만들었다. 그 시간이 아니었다면 적당한 의무감으로 은지를 키웠을지 모른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할까 고민하다가, 해맑게 웃는 은지 얼굴을 보고 혼자 반성했던 날도 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헉헉대는 내 일상이 버거워서, 다시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혼자 못된 상상을 했던 시간도 있다. 그 시간을 잘 견디게 해 준 게 우리 은지다.

나를 보면 두 팔을 벌리고 달려와 안기는 은지, 열 번 뽀뽀해야 한다고 입술을 쭉 내미는 은지가 있어서 오늘도 웃는다. 그래, 행복은 필요가 아니라 필수지. 세상의 모든 아이가 이런 행복을 느끼며 살았으면 좋겠다.

한 아이가 집을 탈출해서 가고 싶다고 한 그곳, 그 ‘위탁가정’이 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게 축복 아닌가!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게.

가정위탁 포스터.

가정위탁 포스터.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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