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억 날리고, 보석 털린 한인상점···92년 LA폭동 공포 커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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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계기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 전역에서 이어지는 가운데 약탈과 폭력에 피해를 보는 현지 한인 상점도 속출하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3일 기준 99건의 재산 피해 신고가 접수된 상태다. 1일 26건에서 이틀 새 3배 넘게 늘었다.

현지 공관에 접수된 피해 99건으로 늘어 #필라델피아에서만 50건 피해 집중 #"LA 폭동 재현되나" 우려도

인종차별 반발 시위사태 이후 한인 상점 피해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인종차별 반발 시위사태 이후 한인 상점 피해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피해가 가장 큰 곳은 7만명의 교민이 사는 펜실베이니아주(州) 필라델피아다. 외교부와 현지 한인들에 따르면 미용용품 상점과 휴대전화 가게를 비롯해 약 50곳의 한인 점포가 습격을 받았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발생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선 10건이 신고됐다. 이어 시카고(9건), 워싱턴D.C.(4건), 로스앤젤레스(3건)가 뒤를 이었다.

◇"코로나 봉쇄도 간신히 버텼는데…"

노스캐롤라이나주 웰링턴에서 35년 이상 영업한 한인 보석상점은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됐다. 지난 30일(현지시간) 가게 창문을 부수고 들어온 이들이 보석들을 모두 쓸어가면서다. 주인의 아들은 기부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오랫동안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회와 소통해왔고, 이번 사건에 대한 분노에도 공감해왔다"며 허탈함을 나타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 한인 점포. 지난 31일(현지시간) 약탈을 당해 가게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졌다. [고펀드미(GoFundMe) 제공]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 한인 점포. 지난 31일(현지시간) 약탈을 당해 가게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졌다. [고펀드미(GoFundMe) 제공]

필라델피아에서 있는 미용용품점을 운영하는 교민은 한순간에 65만 달러(약 7억 9000만 원)의 재산을 날렸다. 31일 밤 30여명이 매장의 셔터를 뜯고 들어와 약탈한 뒤 가게에 불을 지르면서다.

코로나19 봉쇄령의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해 피해를 본 교민들도 많았다. 20년 이상 시카고에서 옷가게를 운영한 한 교민은 코로나19 봉쇄령 이후 두 달 만에 영업 재개를 준비하다 습격을 당했다. 매장을 운영하던 한인은 "상자와 쇼핑카트까지 들고 들어와 가게를 휩쓸어가는 장면을 SNS 영상을 통해 지켜봐야 했다"며 씁쓸해했다.

한인이 미국 시카고주에서 운영하던 옷가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령이 풀려 영업 재개를 앞둔 상태에서피해를 봤다. [고펀드미(GoFundMe) 제공]

한인이 미국 시카고주에서 운영하던 옷가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령이 풀려 영업 재개를 앞둔 상태에서피해를 봤다. [고펀드미(GoFundMe) 제공]

◇"LA폭동 재현될까 우려"
1992년 LA 폭동 당시 큰 피해를 본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에도 긴장감이 감돈다. 코리아타운 근처에서 거주하는 김모(32)씨는 “전쟁이라도 난 듯이 하루종일 헬기 소리와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며 긴박한 현지 상황을 전했다. 이어 “한인들뿐 아니라 인근 아시안들은 다 이전 1992년 LA 폭동을 언급하며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텍사스주에 사는 정한나(22)씨도 “특히 1992년 LA 폭동을 경험한 교민들이 당시와 상황이 유사하게 흘러간다며 우려한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시카고에서 피해를 본 한 교민은 “상점을 습격하는 이들은 시위와 관계없이 애초 약탈을 목적으로 나온 사람들”이라며 “정당한 시위대와 이를 핑계 삼아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을 구분해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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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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