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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신냉전에 애꿎은 홍콩이 당했다···"美기업 61% 철수 고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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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2017년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을 만나는 모습. 약 3년 후 이들은 신(新) 냉전을 본격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2017년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을 만나는 모습. 약 3년 후 이들은 신(新) 냉전을 본격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ㆍ중 신(新) 냉전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지는 첫 번째 새우는 홍콩이 될 전망이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 금융 허브로서의 지위부터 흔들리고 있다. 중국이 28일 통과시킨 홍콩 국가보안법에 반발한 미국이 홍콩에 대해 부여했던 특별 지위를 거둬들이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실현될 경우, 자본과 기업의 대탈출도 각오해야 하는 게 홍콩의 처지다. 한국 경제도 그 여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홍콩이 세계 경제에서 갖는 의미는 크다. 규모부터 아시아 대표급이다. 홍콩 교역소에 따르면 홍콩 증시엔 지난달 기준으로 2477개의 기업이 상장돼있으며, 시가총액은 3조5024억 달러(약 4341조원)에 달한다. 2019년 기준으로 1위인 뉴욕증시(NYSE)와 2위인 미국 기술주 중심 나스닥(NASDAQ)에 이어 도쿄(JPX)ㆍ런던(LSE)ㆍ상하이(SSE) 다음이 홍콩이다. 한국은 15위다.

홍콩의 야경.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 금융허브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사진제공=홍콩관광청]

홍콩의 야경.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 금융허브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사진제공=홍콩관광청]

상황은 급박히 돌아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이번 주 내에 강력한 조치가 나올 것”이라 언급한 뒤, 외교 수장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의회에 “홍콩의 자치권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고했다. 의회 보고는 실질적 첫 절차라는 의미를 갖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특별 지위 박탈을 할 수 있는 행정적 권한을 부여하는 게 의회여서다. 중국은 28일, 최대 국가 행사인 양회(兩會)를 폐막하며 홍콩 보안법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찬성 2878표, 반대 1표였다.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견고하다. 홍콩대 교수직을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 중국연구소장인 손인주 교수는 통화에서 “홍콩 보안법 강행으로 인해 홍콩 경제의 추락과 자본 및 인재의 홍콩 탈출은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홍콩, 몰락의 길로 가나  

된서리는 홍콩이 맞는다. 특별 지위를 박탈당할 경우, 국제 금융 허브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홍콩은 이미 지난해 내상을 크게 입었다. 중국의 송환법 제정에 반발하는 시위와 진압 과정의 폭력사태 때문이다. 영국계 컨설팅그룹인 Z/Yen이 세계 주요 도시들의 금융경쟁력을 산정해 발표하는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조사에서 홍콩은 올해 지난해보다 3계단 하락한 6위에 머물렀다.

이런 홍콩 경제에 미ㆍ중 갈등은 설상가상이다. 금융 분석기관인 캐피탈 이코노믹스의 마크 윌리암스 이코노미스트는 보고서에서 “미국이 특별 지위를 박탈한다면 국제 비즈니스 허브로서의 홍콩의 지위는 빠르게 무너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28일 홍콩에서 한 학생이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8일 홍콩에서 한 학생이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홍콩 실물 경제도 몸살을 앓게 된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홍콩의 국내총생산(GDP) 중 약 13%가 대미 수출에서 발생한다. 더 골치 아픈 건 미국 기업의 철수 러시가 현실화할 우려다. 미국이 특별지위를 거둬들이게 되면 홍콩이 미국 기업과 투자자들에게 갖는 매력도 상당 부분 떨어진다. 홍콩에 진출한 미국 기업 숫자는 1300개가 넘는다. 타격이 상당할 전망이다.

실제로 미국상공회의소(암참)가 지난해 10월 조사한 결과, 홍콩 주재 미국 기업 중 61%가 “홍콩 철수를 옵션 중 하나로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타라 조셉 암참 회장은 당시 “미국 기업들이 당장은 아니어도 리스크가 커지면 실제로 철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최근 미ㆍ중 신 냉전으로 인해 그 리스크는 현실화했다.

증시는 폭락, 달러 페그제도 흔들 

홍콩 항셍지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홍콩 항셍지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홍콩 증시도 직격탄을 맞았다. 일본의 닛케이 지수와 함께 아시아를 대표하는 홍콩 항셍 지수는 중국이 홍콩 보안법 제정 방침을 밝힌 22일, 5%가 급락했다. 이후 중국 본토 투자자들의 지원 자금이 몰리면서 하락폭은 1% 미만으로 떨어졌지만, 폼페이오 장관의 의회 보고로 인해 낙폭은 28일 장중 다시 1.52%까지 커졌다가 -0.72% 하락한 2만3132.76포인트로 장을 마감했다.

28일 오후 홍콩의 증시 하락을 알리는 전광판 앞에 시위대 진압 경찰이 대기 중이다. AP=연합뉴스

28일 오후 홍콩의 증시 하락을 알리는 전광판 앞에 시위대 진압 경찰이 대기 중이다. AP=연합뉴스

한국이 특히 긴장해야 하는 부분은 환율이다.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이 급등하면서 위안화 약세는 현실화했다.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의 상징적 마지노선은 1달러 당 7위안이다. 7위안 선이 깨지는 현상을 두고 ‘포치(破七)’라는 용어도 통용된다. 미ㆍ중 갈등 국면에서 포치는 27일 밤 홍콩 역외시장에서 발생했다. 0.7% 급등한 1달러 당 7.1964위안을 기록한 것. 이는 지난해 9월 미ㆍ중 간 환율 전쟁이 고조됐던 당시의 최고점이었던 7.1959 위안도 넘긴 수치다. 이젠 1달러 당 7.2 위안을 넘길지가 관심사다. 28일 오후6시 현재 1달러에 7.18 위안을 기록하고 있다.

홍콩 달러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홍콩 금융 당국은 환율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페그(pegㆍ고정)제’를 유지하고 있다. 1 미국 달러가 7.75~7.85 홍콩 달러를 넘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제도다. 이 제도의 기반은 풍부한 외환 유동성인데, 자본의 엑소더스가 이뤄지면 페그제 역시 위태롭고, 이는 홍콩발 환율시장, 나아가 아시아 금융시장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열어놓는다.

송도가 제2의 홍콩? 시기상조 

서울대 손인주 교수는 “국제 금융계에선 홍콩에 정치 혼란이 심화하면 달러 페그는 결국 붕괴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라며 “미ㆍ중 충돌 속에서 홍콩 보안법이 그 시기를 앞당길 수 있으며, 이 경우 6월 이후 아시아 지역 기업들의 연쇄 부도가 발생하게 되면 국제 금융 위기가 터질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제2의 홍콩이 어디냐는 얘기까지 국제 금융계에선 나오기 시작했다. 한 국제경제 전문가는 익명을 전제로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이 기민하게 움직인다면 한국의 인천ㆍ송도 같은 곳을 허브로 만들 수도 있는 데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홍콩이 국제 금융 허브로서의 지위를 상실할 경우, 싱가포르 등이 유력한 대안”이라며 “언어 등의 문제로 인해 한국 소재 도시는 아직은 어렵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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