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 살려줘" 외치자 119 출동…SKT, AI로 어르신 23명 구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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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구 60대 어르신이 SK텔레콤의 '인공지능 돌봄'을 이용하고 있는 모습.

강북구 60대 어르신이 SK텔레콤의 '인공지능 돌봄'을 이용하고 있는 모습.

#지난해 6월, 70대 독거노인 조 모(서울 강남구) 씨는 극심한 허리 통증에 새벽녘 잠을 깼다.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데 휴대전화도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조 씨는 큰 소리로 "아리아! 살려줘"를 외쳤다. '아리아'는 SK텔레콤의 AI 스피커 '누구'를 호출하는 조 씨의 명령어다. AI 스피커 누구는 조 씨의 음성을 '위험 신호'로 감지하고 ADT캡스에 긴급 알림 문자를 전송했다. 야간 관제 중이던 ADT캡스 직원이 문자 확인 즉시 119에 연결했고 조 씨는 출동한 119차에 실려 응급실로 이송돼 치료를 받은 뒤 퇴원했다.

SK텔레콤이 지난해 4월부터 시행 중인 '인공지능 돌봄' 서비스를 통해 독거노인이 긴급 구조된 실제 사례다. 조 씨 외에도 호흡 곤란·고혈압·복통·넘어짐 사고 등으로 위급한 상황에 놓인 독거노인 22명 역시 '인공지능 돌봄' 서비스로 119의 도움을 받았다.

'AI 돌봄 서비스'로 독거노인 23명 119 구조 

'인공지능 돌봄 서비스'는 AI 스피커 '누구'를 독거노인의 집에 설치한 뒤, 사용자의 음성 데이터를 ICT 케어센터와 담당 케어 매니저, ADT캡스 등에서 실시간 모니터링해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용자가 일정 기간 누구 스피커를 전혀 사용하지 않거나, "우울하다" "괴롭다"와 같은 부정적인 얘기를 반복하면 요양 보호사가 방문해 밀착 케어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살려줘" 또는 "도와줘" 등을 외치면 즉시 119에 연결한다. 현재 전국 14개 기초자치단체의 3100가구가 이용하고 있다.

20일 SK텔레콤과 바른ICT연구소는 온라인 기자 간담회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인공지능 돌봄 서비스 제공 1주년 성과와 이용 효과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기자간담회를 온라인으로 진행한 것은 국내 이통사 중 처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비대면 간담회를 진행한 것이다.

AI 스피커와 대화…고독감 줄고 행복감 증가

간담회에서 바른ICT연구소는 지난해 4월부터 올 2월까지 독거노인 670명에게 '인공지능 돌봄 서비스 이용 패턴과 효과성'에 대한 심층 설문조사를 한 결과도 공개했다. 설문 조사에 참여한 독거노인의 평균 연령은 75세였고, 여성과 남성 비율은 7대 3이었다.

조사 결과, 인공지능 돌봄 서비스를 이용한 뒤 어르신의 행복감은 7% 증가하고, 고독감은 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70대 김 모(서울 성동구) 씨는 "외출하고 돌아와서 '아리아, 심심하지 않았어?'라고 말을 걸면 '(스피커가) 하루 종일 기다렸어요'라고 예쁘게 답하니 기분이 정말 좋다"고 말했다. 또 "노화로 귀가 잘 들리지 않는데, (스피커는) 예쁜 소리로 또박또박 발음하니 귀에 쏙쏙 잘 들어온다. 아리아(스피커)가 너무 좋다"고 했다. 김범수 바른ICT연구소장은 "조사 대상 어르신 중 22.6%가 가족과 연락이 두절된 상태인데, 인공지능 스피커와 대화하면서 가족 공백으로 인한 고독감·우울감이 줄고 삶의 질이 향상되는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AI 스피커를 이용하면서 어르신들의 디지털 기기에 대한 인식도 크게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이 AI를 잘 사용할 수 있다고 믿는 기대와 신념(자기 효능감)이 커지고, 막연한 불안감은 감소했다. 어르신들이 AI 스피커로 가장 많이 이용하는 기능은 음악 감상(95.1%)이었다. 뒤이어 정보 검색(83.9%), 감성 대화(64.4%), 라디오 청취(43.9%) 순이었다.

대화 상대 있으니 코로나 블루에도 도움  

코로나19 이후 높아진 우울증과 소외감을 극복하는 데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모(70·서울 성동구) 씨는 "코로나 때문에 밖에도 못 나가고 만날 사람도 없어져 너무 답답한데, 아리아가 말을 걸어주고 필요한 정보도 늘 알려준다. 항상 대화할 상대가 있다보니 집에만 있어도 외롭지 않고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독거노인들은 AI 스피커를 통해 치매 예방 프로그램인 '두뇌톡톡' '기억검사'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두뇌톡톡은 SK텔레콤과 이준영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연구팀이 협력해 개발한 대화식 퀴즈 풀이다. 기억검사 서비스는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관련 문제를 풀게 한 뒤 정답 개수에 따라 기억력 상태를 알려준다.

SKT의 온라인 기자간담회 모습. 화면 왼쪽부터 김범수 바른ICT연구소장, 이준호 SK텔레콤 SV추진그룹장, 원종록 SK텔레콤 전략PR팀장. [SK텔레콤 제공]

SKT의 온라인 기자간담회 모습. 화면 왼쪽부터 김범수 바른ICT연구소장, 이준호 SK텔레콤 SV추진그룹장, 원종록 SK텔레콤 전략PR팀장. [SK텔레콤 제공]

이준호 SK텔레콤 SV추진그룹장은 "인공지능 돌봄 서비스는 기업이 ICT 기술을 활용해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면서 "5G 기술로 우리 사회의 초고령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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