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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말씀 하신다" 이 말 할때부터 재난지원금은 뒤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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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2차 추가경정예산안이 30일 국회를 통과했다. 재난지원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생계와 소득 보장을 위한 정부 대책이다. 뉴스1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2차 추가경정예산안이 30일 국회를 통과했다. 재난지원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생계와 소득 보장을 위한 정부 대책이다. 뉴스1

최대 100만원의 긴급재난지원금이 전 가구에 뿌려진다. 초유의 일이다. 여당과 정부는 생색을, 야당은 협치 명분을 얻었다. 주머니에 돈 들어오는데 싫어할 국민도 별로 없다. 얼핏 만점에 가까운 결말이다. 그러나 되짚어보면 오답 투성이 지원금이다.

 국회는 30일 12조2000억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정부 내, 당정 간, 여야 간, 국회와 정부 간 이견을 조정해 낸 소통과 협치의 대표적 사례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올해 두번째 추가경정예산안이 30일 새벽 국회를 통과했다. 뉴스1

올해 두번째 추가경정예산안이 30일 새벽 국회를 통과했다. 뉴스1

①표가 개입하자 정책이 뒤틀렸다  

 긴급재난지원금 논의는 초반부터 뒤틀렸다. '표'가 정책에 개입되면서부터다. 이번 지원금은 취약계층 구휼 목적에서 설계됐다. 재산·근로 유무에 관계없이 기초 생활을 보장하는 '기본 소득'이 아니었다. 그래서 애초 정부 안은 소득 하위 50% 지급이었다.
 그런데 시점이 묘했다. 총선이 코앞이었다. 3월 29일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여당은 "답답한 말씀만 하고 계신다"며 홍남기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압박했다. 70% 지급으로 대상이 넓혀졌다. 여당은 한 발 더 나갔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고민정 후보가 선출되면 전 국민에게 1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서울 광진을 지원 유세에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100% 지급을 할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기본 소득'으로 접근했어야 한다"며 "표를 의식하다 보니 취지는 사라지고 지급 범위만 논란이 된 꼴"이라고 지적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비상경제회의 결과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주요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홍 부총리,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사진 기획재정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비상경제회의 결과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주요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홍 부총리,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사진 기획재정부

②역량 부족은 속도 저하를 불렀다 

 이름에 '긴급'이 붙을 만큼 이번 지원금의 핵심은 속도였다. 정부가 50% 지급안을 당·청에 처음 밝힌 것은 3월 27일이었다. 최초 지급 예정일은 5월 4일이다. 발표에서 지급까지 38일이 걸렸다. 50%든 70%든 처음부터 기준이 모호했기 때문이다. 장관 5명이 나선 합동브리핑(3월 30일)에서 소득 기준을 묻는 말에 돌아온 답은 "소득 하위라는 건 일상적인 소득의 개념"이라는 애매모호한 답뿐이었다. 잣대를 소득으로만 할지, 재산까지 포함할지, 포함한다면 어떻게 할지를 놓고 기재부와 보건복지부는 엇박자를 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제각각 행보도 혼란을 부추겼다. 그래서 '100% 지급'은 정부의 자승자박이란 평가가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선거를 앞둔 여당이 지급 범위 확대를 급히 던졌는데, 행정부는 이를 제대로 정리해 국민에게 설명할 능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역대 추경 규모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역대 추경 규모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③돈 더 쓰는데 효과는 미지수

 전 가구 지급으로 나랏돈은 더 들어가게 됐다. 70% 지급을 기준으로 한 추가경정예산 규모는 7조6000억원이었다. 100% 지급이 되면서 추경 규모는 12조2000억원으로 불었다. 지방비를 합하면 14조3000억원이다. 이 바람에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89조원을 넘어섰고, 나랏빚은 819조원이 됐다. 30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이는 3차 추경까지 하면 경제규모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중은 외환위기 때보다 많아질 수도 있다. 홍남기 부총리는 “3차 추경은 대부분 적자 국채 발행을 통해 충당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쓸 돈이 생겼으니 당장 생계가 막막했던 계층에는 단비다. 소비가 늘어 소상공인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란 게 정부의 기대다. 그러나 쓸 수 있는 곳이 한정된 지역상품권의 소비 유발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지속성에선 마냥 좋은 일은 아니다. 빚내서 주는 돈이기 때문이다. 국채 발행이 늘면 기업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다. 채권 시장에서 회사채보다 더 안전한 국채로 수요가 몰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기업 자금난이 심화해 고용이 부진해지면, 단기 지원금은 금방 물거품이 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3차 추경 이전에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 계층을 최대한 줄여서 앞으로의 재정 부담을 미리 덜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긴급재난지원금 2차 추경.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긴급재난지원금 2차 추경.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④‘재난 지원’사라지고 ‘관제 기부’ 변질

 재난지원금이 자발적 기부를 전제로 한 지원이라는 점도 걸림돌로 남아 있다. 국회는 29일 ‘긴급재난지원금 기부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특별법’도 통과시켰다. 홍 부총리는 "지원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관가와 재계에선 "자발적이라지만 기부를 안 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사정이 어렵거나 신청을 못 하는 사람은 찾아서라도 줘야 하는데, 신청을 안 했다고 기부금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은 바람직한 입법 예가 아니다”며 “기부라는 좋은 제도를 재난지원금이라는 시급한 문제에 끌어들여 원래의 취지를 훼손한 행정편의주의”라고 지적했다.

국회로 넘어간 긴급재난지원금 2차 추가경정예산 논의도 여야 간의 이견으로 지지부진했다. 연합뉴스

국회로 넘어간 긴급재난지원금 2차 추가경정예산 논의도 여야 간의 이견으로 지지부진했다. 연합뉴스

첫 재난지원금, 오답 노트 만들어야

 홍 부총리는 이번 지원금이 일회성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한번 선례가 생긴 이상 재난 상황이 오면 비슷한 요구가 터져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재난지원금 지급 조건 등에 대한 공감대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난지원금을 또 줘야 할 때가 오면 예산을 남용하지 않도록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게 숙제로 남았다”고 말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향후 재난지원금을 줄 때 지원 기준이 구체적일수록 신속한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지체계의 해묵은 숙제도 해결해야 한다. 소득 기준, 건강보험 직장·지역가입자 간 불평등 논란 등 국민의 소득 상황을 국가가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조준모 교수는 “이번 일을 계기로 기존의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가 드러났다”며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미봉책을 넘어 ‘디지털 원샷’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등 제도 개혁을 근본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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