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권에 대권도 거론된다…용퇴론 86그룹 '넉달의 급반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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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전 원내대표(왼쪽)와 이인영 원내대표. [중앙포토]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전 원내대표(왼쪽)와 이인영 원내대표. [중앙포토]

더불어민주당에서 지난 20년간 주류세력이던 86(80년대 학번, 60년대생)그룹이 21대 국회에선 더욱 비중이 커졌다. 5선(조정식·송영길), 4선(우상호·이인영·윤호중·김태년) 등 당 중진들의 상당수가 86그룹이 됐다. 당내에선 “86그룹은 당의 허리였는데 이제는 머리가 됐다”는 말이 나온다.

작년 11월만 해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비리 의혹 때문에 여당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86그룹부터 용퇴해야한다”는 세대교체론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초·재선 의원들이 “허리를 자르면 안 된다”며 반발했고 원혜영 공천관리위원장도 올해 1월 "86이 허리 역할을 잘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하면서 일단락됐다. 올해 2~3월 공천 시기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국면이 맞물리면서 '86 용퇴론'은 더 이상 이슈가 되지 못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한차례 세대교체론을 겪었던 86그룹이 새로운 리더십을 보이지 못하면 대안세력에 도전을 받을 것”이라며 “반면 새 국회를 잘 이끌면 향후 10년간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1987년 6월 항쟁을 주도한 86그룹이 정계에 진출한 것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이다. 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들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탄핵역풍’이 불면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대거 금배지를 달았다.

차기 민주당 당대표에 도전할 것으로 전망되는 홍영표, 우원식, 송영길 의원(사진 왼쪽부터). [연합뉴스]

차기 민주당 당대표에 도전할 것으로 전망되는 홍영표, 우원식, 송영길 의원(사진 왼쪽부터). [연합뉴스]

이후 이들은 당내 주요 인사들과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몸집을 불렸다. 역대 민주당계 정당에서 당 대표를 지낸 통합민주당 손학규·정세균, 민주통합당 한명숙, 민주당 추미애 전 대표에 이어 현재 이해찬 대표까지 86그룹의 지지 없이 당권을 잡은 경우는 없다.

당내에선 다음달로 예정된 원내대표 선거와 향후 치러질 전당대회, 그리고 올해 연말부터 본격화될 2022년 대권 레이스에서 86그룹이 어떤 식으로 분화할지를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당권 주자에선 86그룹의 맏형격인 홍영표·우원식(62) 의원이 가장 앞서간다는 분석이 나온다. 5선인 송영길(57) 의원과 김근태(GT)계 좌장 이인영(55) 원내대표가 당권에 도전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우상호(57) 전 원내대표는 2022년 서울시장 도전으로 마음이 기울었다고 한다.

원내대표 선거에도 86그룹이 여러명 거론된다. 김태년(55) 전 정책위의장이 지난해에 이어 다시금 뛰어들 거란 관측이 나오고, 총선 공천을 주도한 윤호중(57) 사무총장의 도전설도 있다. 3선 배지를 단 박완주(53) 의원이 당내 모임 ‘더좋은미래’의 지지를 바탕으로 출사표를 던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이 14일 당시 서울 종로구 동묘역앞에서 열린 이낙연 민주당 후보 집중유세에서 지지발언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이 14일 당시 서울 종로구 동묘역앞에서 열린 이낙연 민주당 후보 집중유세에서 지지발언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당에선 86그룹간의 교통정리를 걱정하는 기류도 있다. 당의 요직은 몇자리 없다. 이들의 후배격인 민주당 한 의원은 “86그룹들이 다들 ‘선의의 경쟁’이라며 기어코 나오려고 할 것 같다. 자리싸움이 심해지면 여론이 안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문재인 정부 후반기에 일부 86그룹들을 입각시켜 역할 조정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차기 대선후보 경쟁에선 86그룹이 한발짝 뒤로 물러나 있다. 이낙연 상임 선대위원장이 워낙 강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그럼에도 이번 총선 선거운동 기간 전국을 돌며 지원 유세를 벌인 임종석(54)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강원 선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강원 8석 중 3석을 얻고, 본인도 10년 만에 국회로 복귀한 이광재(55) 전 강원지사가 잠재적 대권 주자로 분류된다.

86그룹의 핵심인사는 “올해는 당내 지도체제를 정비한 뒤 코로나19 극복에 중점을 두는 게 급선무”라며 “내년 대권국면에서는 분위기가 바뀔 텐데 조만간 86그룹 모임을 통해 역할을 고민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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