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16) 고무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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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고무신
ㅡ시각서정(視覺抒精) · 1
장순하(1928~)  

눈보라 비껴 나는
전ㅡㅡㅡ군ㅡㅡㅡ가ㅡㅡㅡ도(全群街道)
퍼뜩 차창으로 스쳐 가는 인정아!
외딴집 섬돌에 놓인
   하   나
      둘
   세  켤레

-백색부(1968)

고무신 - 시각서정(視覺抒精)·1

고무신 - 시각서정(視覺抒精)·1

현대시조의 새 영역을 개척한 사봉(史峯)

시조가 이 정도 되면 고유의 형식을 넘어 회화성마저 띠게 된다. 눈보라 날리는 날, 전주와 군산을 잇는 도로를 달리며 본 풍경을 스케치했다. 외딴집 섬돌에 놓인 세 켤레 신. 두 내외의 신 사이에 아이의 신이 놓였다. 그것을 시인은 ‘퍼뜩 차창으로 스쳐 가는 인정’이라고 썼다. 이 작품은 시조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시인의 뜻은 실험 정신을 실제적으로 구현해보고자 함에 있었을 것이다. 이른바 ‘낯설게 하기’의 한 전범이다.

사봉 장순하는 1957년, 개천절 기념 전국 백일장 장원 당선으로 ‘현대문학’ 초대 시인이 되어 등단했다. 전통시조의 형식을 탈피해 새로운 시도를 추구함으로써 현대시조의 형식과 내용 면에서 새 영역을 개척했다. 특히 그는 고시조의 전통을 잇는 서사와 율격으로 사설시조를 부활시켰다.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않던 그가 건강이 좋지 않아져 역시 투병 중인 부인과 함께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선생의 글을 대한 지 꽤 되었다. 부디 쾌유를 빈다.

유자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