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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정봉주도 못피했다···당선돼도 떠는 '허위사실공표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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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6일 이재명 경기지사가 수원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나와 차에 타고 있다.   수원고법 형사2부(임상기 부장판사)는 이날 이 지사에게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당선 무효형(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 6일 이재명 경기지사가 수원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나와 차에 타고 있다. 수원고법 형사2부(임상기 부장판사)는 이날 이 지사에게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당선 무효형(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연합뉴스]

말 한마디로 의원직과 피선거권을 잃어버리는 법이 있다. 바로 공직선거법이다. 이 법은 선거기간 중 허위사실을 공표한 후보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다. 벌금 100만원만 선고되면 직(職)은 물론 다음 선거에 나갈 피선거권도 5년간 박탈된다. 수억~수십억원 단위의 선거 보조금도 반납해야 해 신용불량자가 될 각오도 해야한다.

의혹 제기, 상당한 이유 없다면 의원직 잃을 수도

대법원 선고를 앞둔 이재명(56) 경기지사는 이 '허위사실공표죄'에 걸려 지사직을 잃을 위기에 처해있다. 친형 강제입원 시도에 관여했지만 토론회에서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언해 문제가 됐다.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인 정봉주 전 의원도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의혹을 제기했다가 허위사실공표죄로 징역 1년을 살았다. 다수의 국회의원 변호를 맡았던 황정근 변호사(법무법인 소백)가 "선거에서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시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정봉주, 이재명, 김승환의 사례  

대법원은 허위사실공표죄로 기소된 피고인에겐 자신이 제기한 의혹이 존재한다고 수긍할 소명을 요구한다. 발언이나 의혹 제기가 꼭 진실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진실이라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황정근 변호사는 "구체적인 소명자료 없이 의혹제기를 하다가는 처벌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허위사실을 발언할 당시 허위인식의 여부의 적극성·고의성·공표의 방식도 함께 고려한다. 대법원은 정봉주 전 의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제기한 뒤 소명하지 못했다며 2011년 징역 1년을 확정했다.

직은 물론 선거 보전비용도 반납해야  

대법원은 지난해 9월부터 8개월째 이재명 지사 사건을 심리 중이다. 대법원에서 원심을 확정하면 이 지사는 지사직은 물론 정부로부터 보조받은 경기지사 선거비용 38억여원도 반납해야 한다. 김승환(67) 전북 교육감도 2018년 6월 지방선거 토론회에서 허위사실을 말한 혐의로 기소됐다. 전북교육청의 인사만족도가 60%대인데 "만족도가 90%를 왔다갔다"고 발언한 것이 문제였다. 1심 법원은 "허위사실을 공표해 선거의 공정성을 해쳤지만 선거에 미친 영향이 크지 않았다"며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양측 모두 항소를 포기하거나 취하했고 김 교육감은 직을 유지했다.

일각에선 벌금 100만원 선고로 국민이 선출한 당선직과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것은 지나치단 시각도 있다. 한 현직 부장검사는 "당선무효형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이 정도면 문제'라는 판사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요소가 짙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 경기도 지역위원장들은 이 지사의 당선무효형 선고 근거가 된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해서도 '조항이 자의적이고 포괄적'이란 이유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4·15 총선 서울 광진을에 출마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후보(왼쪽)와 오세훈 미래통합당 후보가 14일 서울 광진구에서 유권자들을 향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스1]

4·15 총선 서울 광진을에 출마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후보(왼쪽)와 오세훈 미래통합당 후보가 14일 서울 광진구에서 유권자들을 향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스1]

21대 총선도 고발 난타전   

21대 총선에서도 여러 후보들이 서로를 허위사실공표죄로 고발했다. 격전지일수록 더 그렇다. 서울 광진을에선 선거관리위원회가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후보를 허위사실공표혐의 등으로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선거공보물에 주민자치위원인 한 상인회장이 자신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했다는 내용을 담아 배포한 혐의다. 선관위는 고 후보 측이 해당 자치위원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미래통합당 나경원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후보가 '양승태 대법원의 피해자'란 허위사실을 공표했다고 고발했다. 이수진 후보는 자신이 피해자가 맞다는 입장이다.

요즘 정치인들은 공직선거법에 단련이 되고 법률 자문도 받아 '소명자료'를 들고 의혹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전히 매 선거마다 허위사실공표죄를 빠져나가지 못하는 당선자도 부지기수다. 당장 한 표가 급해 근거없는 의혹제기의 유혹에 빠지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수사를 했었던 대형로펌의 한 전관 변호사는 "수사를 하다보면 유죄를 피해가기 어려운 발언들이 있다. 수사기관은 일단 고발이 들어오면 후보자의 발언을 정말 꼼꼼히 본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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