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 생산·공급망도 붕괴하나…유엔 “4~5월 식량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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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지구촌에 방역 장벽이 세워진 데 이어 식량 장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유엔의 식량농업기구(FAO)가 국제기관으로는 가장 먼저 코로나19로 인한 식량 위기를 공식 경고했다.

코로나 장기화에 ‘식량 장벽’ 생겨 #농산물 수출국 곳간 잠그고 비축 #태국 달걀, 베트남 쌀 수출 금지 #피치 “한국 등 수입국 타격 우려”

최근 홈페이지에 올린 질의 응답 형식의 글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을 보호하고 국제 식량 공급망을 유지하면서 식량 시스템에 미칠 팬데믹(코로나19 대유행)의 영향을 완화하는 조치를 신속하게 취하지 않을 경우 식량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밝혔다. FAO는 “현재까지는 식량 공급은 적당하고 시장도 안정적”이라면서도 “4월과 5월에 식량 공급망의 붕괴가 예상된다”고도 지적했다. 이같은 우려는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갖가지 대응책이 식량 생산과 공급을 차단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나왔다. 예컨대 코로나19로 인해 이동금지가 확대되고 검역 장벽이 높아질 경우 농업 분야에선 일손 부족을 초래하고, 국제적인 식량 수급엔 지장을 줄 수 있다.

피치그룹 산하의 컨설팅업체인 피치솔루션스 역시 코로나19가 식량 수급에 미칠 불안을 주목했다. 피치솔루션스는 “야자유 생산이나 육류 가공과 같은 노동집약적 분야에선 감염 위험도 커지고 이에 따른 사업장의 일시 폐쇄 가능성도 커진다”고 예를 들었다.

실제로 말레이시아에선 지난달 18일부터 2주간 국가 봉쇄령을 내렸는데 인접국가인 싱가포르가 술렁였다. 말레이시아에서 공급되는 각종 신선 농산물이 차단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에 싱가포르 국민이 한때 슈퍼마켓을 찾아 과일과 채소를 사재기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피치솔루션스는 특히 “일부 국가들은 식량 안보 차원에서 무역 통제나 공격적인 비축에 나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식량 장벽’은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캄보디아는 오는 5일부터 쌀 수출을 금지하기로 했다. 캄보디아는 연간 50만t의 쌀을 수출한다. 앞서 인도·태국에 이어 세계 3위의 쌀 수출국인 베트남도 지난달 24일부터 쌀 수출을 멈췄다. 응우옌 쑤어 푹 총리가 코로나19 대책 회의를 갖고 “어떤 경우에도 식량 안보는 지켜야 한다”고 밝힌 뒤 이 같은 조치가 시행됐다. 태국은 지난 달 달걀의 국내 수요가 평소보다 세 배 가량 급등하자 일주일간 수출 금지를 한 데 이어 이 조치를 한 달 더 연장하기로 했다. 러시아도 지난달 20일부터 열흘 동안 모든 종류의 곡물 수출을 일시적으로 제한했다. 카자흐스탄도 최근 밀가루와 메밀, 설탕, 야채 등의 수출을 중단했다.

식량 장벽이 더욱 가시화할 경우 한국도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피치 솔루션스는 식량 가격 급등에 가장 크게 노출될 나라에는 한국, 중국, 일본과 중동 등이라고 콕 짚었다.

14억 인구의 중국은 코로나19가 몰고 올 수 있는 식량 후폭풍에 이미 긴장하고 있다. 신화사·환구시보 등은 지난달 31일 식량 위기 문제를 일제히 보도했다. 신화사는 국가식량기름정보센터의 고급경제위원 왕랴오웨이(王遼偉) 인터뷰를 통해 “지난 5년 동안 연속으로 6억 5000만t 이상을 생산해 곡물 자급률이 95% 이상에 이르고 있어 식량 위기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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