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한 확진자의 38쪽 꼼꼼일지···첫 문장은 "무고한 피해 없게"

중앙일보

입력 2020.03.03 22:51

업데이트 2020.03.03 23:06

지난달 26일 대구시 북구 칠곡경북대학교병원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심 환자 검사 준비를 하고 있다(왼쪽). A씨가 남긴 일지.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대구시 북구 칠곡경북대학교병원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심 환자 검사 준비를 하고 있다(왼쪽). A씨가 남긴 일지. [연합뉴스]

“다른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마음에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다음 기록을 남깁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1129번 확진자 A씨(58)는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느끼자 펜을 들고 이 같은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A씨는 코로나19 감염 증상을 자각한 뒤 증세와 동선 등을 기록했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기 싫은 마음에서다.

3일 인천시에 따르면 인천 세 번째 코로나19 확진자인 문화관광해설사 A씨는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을 앞두고 있다. A씨가 지난달 25일 인하대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 만이다.

A씨는 업무 특성상 평소에도 메모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A씨는 지난 1월 23∼26일 서울 창덕궁과 경복궁 등 관광지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문화 해설 업무를 마친 뒤 인후통이 느껴지자 코로나19 감염을 의심했다. 그는 지난 1월 31일부터 스스로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매일 증상과 치료 상황을 일지로 꼼꼼히 기록했다.
주변 병원을 갈 때도 타인과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버스·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 이용을 최대한 자제하며 먼 거리도 걸어 다녔다. 1시간 이상 걸어가야 할 때만 택시를 이용했다.

A씨는 83세 노모와 단둘이 있는 집에서도 계속 위생 장갑과 마스크를 낀 채 생활했고, 식기도 무조건 소독해서 쓰는 등 질병관리본부의 건강관리 지침을 지켰다. 연로한 어머니의 건강을 우려해서다.

A씨가 증상과 치료 상황 등을 적은 일지. [연합뉴스]

A씨가 증상과 치료 상황 등을 적은 일지. [연합뉴스]

그러면서 그는 격리 기간 38쪽짜리 일지를 썼다. 여기엔 각 날짜와 함께 “오후 9시 50분 오른쪽 36.1도, 9시 51분 왼쪽 36.07도” “목 뒤 어깨에서 등목으로 불편해진다” 등과 같은 신체 증상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1월 24일 12시 10분쯤 집에서 도화역 도보 이동” “12시 30분쯤 전철 승차, 종로3가역 하차해서 3호선으로 갈아탐” 등처럼 아직 증상이 나타나기 전 대중교통을 이용한 내용도 나온다.

[사진 인천시 페이스북]

[사진 인천시 페이스북]

A씨의 이 같은 노력을 확인한 인천시는 코로나19 의심환자들이 A씨처럼만 행동하면 주변 확산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홍보 포스터를 제작하기도 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A씨가 예방수칙을 잘 지켜 그의 어머니와 접촉자 23명이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며 “역학조사를 할 때도 A씨가 남긴 일지 덕분에 동선 파악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뤄져 인천에서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A씨는 지난달 13일 동네 병원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발열 증상이 가라앉지 않아 지난달 23일 재차 같은 병원에서 2차 검체 채취검사를 한 끝에 지난달 25일 양성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는 한 차례 음성 판정을 받았음에도 계속해서 증세와 동선 등을 일지에 남겼다.

퇴원을 앞둔 A씨는 “의료진의 쉼 없는 노고와 치료 덕분에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할 수 있게 되었다”며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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