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매출보다 더낼 판인데···‘임대료 상생’ 공항공사엔 없다

중앙일보

입력

공항공사 vs 면세점, 임대료 핑퐁게임

코로나19 확진자가 방문했던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면세점이 휴점하고 방역을 실시했다. 뉴스1

코로나19 확진자가 방문했던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면세점이 휴점하고 방역을 실시했다. 뉴스1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관광객이 줄어든 면세점업계가 신음하고 있다. 이들은 공항 임대료 책정 방식을 일시적으로 변경해달라고 요구하지만 공항공사 측은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국내 면세점업계는 공항·항만 면세구역에 매장을 낼 때 ‘자릿세’를 낸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면세점 사업자 공고문’에 따르면, 임대료를 납부하는 방식은 크게 2가지다. 일단 ▶경쟁입찰에서 면세점 사업자가 낙찰받은 임대료(최소보장금)은 무조건 매달 납부해야 한다. 이 금액은 매년 여객수요와 연동해서 최대 9%까지 늘어날 수 있다. 2018년에는 3.2%(2터미널)~5.6%(1터미널) 늘었다.

또 ▶면세점 사업자가 해당 사업장에서 거둔 매출액에 영업요율을 곱한 금액을 따진다. 영업요율은 품목별로 다른데, 화장품·향수의 경우에는 영업요율이 30%다. 만약 매출액*영업요율이 최소보장금보다 높을 경우, 차액을 추가로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납부한다. 반대로 이 금액이 최소보장금보다 적으면, 최소보장금만 납부한다.

코로나19가 국내서 확산한 이후 한산해진 면세점. 연합뉴스

코로나19가 국내서 확산한 이후 한산해진 면세점. 연합뉴스

예컨대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DF2면세사업장에 입점한 호텔신라는 지난해 이 사업장에 대한 임차료로 1056억원을 납부했다. 원래 지급하기로 약속한 금액(최소보장금)은 952억원이었지만, 매출액(3510억원)에 영업요율(30%)을 곱한 금액(1053억원)이 최소보장금(952억원)을 초과했기 때문이다.

똑같은 방식으로 지난해 호텔롯데·호텔신라·신세계면세점 등 8개 면세사업자가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납부한 자릿세는 연간 1조761억원에 달한다.

인천공항 ‘자릿세’만 매년 1조원 벌어 

이런 납부 방식은 면세점 장사가 잘되면 문제가 없다. 최소보장금을 산정하는 기준인 낙찰가는 면세사업자가 납부할 의향이 있다고 직접 써낸 가격이라서다. 문제는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공항을 찾는 관광객이 비정상적으로 감소했다는 점이다. 국내 주요 면세점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발병한 올해 들어 면세점업계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0.2% 감소했다.

면세사업자는 연평균 관광객 수를 기준으로 연간 매출액을 산정해서 낙찰가를 써내는데, 관광객이 크게 줄면 매출도 그만큼 감소할 수밖에 없다. 면세점업계 관계자는 “일부 면세사업장은 2월 기준 매출보다 더 많은 임대료를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신라면세점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관광객이 면세점을 방문할 경우 마스크 착용을 요청한다. 연합뉴스

신라면세점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관광객이 면세점을 방문할 경우 마스크 착용을 요청한다. 연합뉴스

공항 방문객이 감소하면 면세사업자가 상당한 타격을 입는 것과 반대로, 공항은 전혀 손해 볼 게 없다. 면세점에 손님이 없어도 최소보장금은 기본적으로 벌어들일 수 있어서다. 이를 두고 한 면세점 관계자는 “무슨 일이 터져도 공항이 손해 볼 일은 없다”며 “뭐니 뭐니 해도 한국에선 땅 주인이 최고”라고 한탄했다.

면세점, 코로나19로 매출 60% 줄어 

신라면세점. [사진 신라면세점]

신라면세점. [사진 신라면세점]

어려움이 커진 국내 주요 면세사업자는 지난 11일 인천국제공항공사·한국공항공사·한국항만공사에 한시적으로 임대료를 줄여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인천국제공항공사는 17일 공문을 보내 ‘임대료 인하는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다. 대신 공사 측은 면세점 영업시간 단축과 심야시간 운영 축소를 제안했다.

이에 대해 한 면세점업계 관계자는 “매달 나가는 임대료가 고정된 상황에서 영업시간을 줄이면 매출이 그만큼 줄어 더 힘들어지는데, 영업시간을 줄여서 인건비를 줄이자는 건 황당한 제안”이라고 말했다.

또 공사 측은 마케팅 활성화 지원 방안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다. 역시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라는 게 면세점 업계의 주장이다. 공항 방문객이 감소한 상황에서 마케팅을 확대한다고 매출이 늘어나기는 어렵다고 본다.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입국장 면세점. 뉴스1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입국장 면세점. 뉴스1

국내 주요 면세사업자는 조만간 한국면세점협회를 통해서 ▶최소보장금은 납부하지 않고, ▶매출액과 영업요율을 곱한 금액만 납부하는 방안을 공사 측에 제안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임대료를 내더라도, 매출이 많은 사업장은 어차피 임대료를 많이 납부하기 때문이다.

한 면세점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이해관계자가 고통을 분담할 수 있는 나름 합리적인 요구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면세점 업계의 아이디어에 대해서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면세점업계가 공문을 보낸 이후 검토 해보겠다는 입장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지난 2009년에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면세점 임대료를 감면했는데, 국세청이 세금 포탈 혐의로 세금을 추징했다가 소송까지 해서 추징금을 돌려받은 적이 있다”며 “이와 같은 전례 때문에 섣불리 면세점 인하를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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