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이인규 檢조사 받았다···"盧 논두렁시계, 국정원 개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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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2009년 6월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2009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지내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63‧사법연수원 14기) 변호사가 노 전 대통령의 고가 시계 수수 의혹 보도 경위와 관련해 최근 검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13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인규 변호사는 지난해 8월 미국에서 귀국한 뒤 최근 서울중앙지검 인권·명예전담부인 형사1부(부장 성상헌)에 서면 진술서를 제출했다. 이 변호사는 서면 조사를 통해 “해당 보도에 국가정보원이 개입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국정원 간부가 자신을 찾아와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 수사하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도덕적 타격을 가하자’고 했지만 자신은 거절했고, 결국 관련 보도가 나간 걸 보면 국정원 등 힘있는 세력이 개입했다는 취지다. 자신은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해 피의사실을 공표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이 변호사가 2018년 6월 미국에서 A4 5장 분량으로 한국 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과 유사한 내용이다. 이 변호사는 당시 입장문을 통해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 있어서 수사 보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을 기울였다”며 “국정원 관계자들이 사무실로 찾아와 언론에 흘리자고 제안해 화를 내며 강하게 질책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2009년 4월 행정안전부 차관과 함께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당일 노 전 대통령 시계 수수 의혹이 실제로 보도됐다는 보고를 받자,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을 가리켜 ‘정말 X 자식’이라며 욕했다는 장면을 소개했다. 이 변호사는 “국정원 행태에 도저히 화를 참을 수 없었다”라며 당시 저녁 자리에 참석했던 공무원 실명과 식당 이름을 공개했다.

입장문 발표 전 미국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 변호사가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식당에서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는 사진이 공개됐다. 이에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인규 변호사를 즉각 소환시켜 수사하라”는 주장이 나왔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당시 “자수해서 광명 찾으세요, 국민이 우습습니까”라며 이 변호사를 공격했다. 지난해 12월 이 변호사가 귀국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민주당은 “검찰은 이제라도 제대로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논두렁 시계 사건 일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 논두렁 시계 사건 일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이인규 귀국 뒤 “논두렁 보도 검찰발 아님을 명백히 밝히겠다”

노 전 대통령 시계 수수 의혹을 처음 보도한 방송사의 전직 고위 간부도 해당 의혹을 설명한 확인서를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간부는 그동안 관련 사건의 보도 경위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가 지난해 11월 관련 민사소송에 구체적인 증언이 담긴 확인서를 제출했고, 이 문서가 중앙지검으로도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간부는 확인서를 통해 노 전 대통령 부부가 시계를 받았다는 보도는 국정원 정보요원(IO)으로부터 듣고 시작됐다고 밝혔다. 이 간부는 전직 대통령이 관련한 사안이라 신중해야 했고, 사실 확인이 중요해 취재진을 지휘하는 중간 간부에 ‘소스(출처)가 어디냐’가 물었더니 ‘국정원 IO인 것 같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당시 자신과 고교 동문인 또 다른 국정원의 간부에 물었더니 ‘그런 정보가 있는 것 같다’고 답해 보도로 이어졌다고 진술했다. 다만 검찰에서는 확인이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변호사는 '논두렁 시계 보도'가 검찰이 언론에 거짓 정보를 흘린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되면서 검찰 개혁이 더욱 필요하다는 동기로 최근 활용되자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변호사는 귀국 뒤 지난해 12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조사에서 사실 그대로 진술해 논두렁 보도가 검찰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명백히 밝히겠다”고 말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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