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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님과 금배지의 자릿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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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복지행정팀장

하현옥 복지행정팀장

“예술적인 과세는 거위가 비명을 덜 지르게 하면서 최대한 많은 깃털을 뽑는 것과 같다.” 프랑스 루이 14세 때 재무장관을 역임한 장 바티스트 콜베르의 말이다. 그는 재정수입을 늘리려 가혹하게 세금을 거둬들였다. 재상까지 오른 콜베르는 ‘매관매직’으로 관직에 발을 들였다. 프랑스에서는 매관매직이 왕실 재정을 보충하는 주요한 수단이었다. 16세기 절대주의 왕정이 성립되며 매관매직이 법으로 정해졌을 정도다. 돈을 주고 관직을 산 뒤 별도의 세금을 내면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관직세’도 있었다.

‘현대판 매관매직’이 벌어지는 곳은 미국이다. 대통령이 고액 선거후원금 기부자를 정부 고위직이나 외국 대사 등에 임명하는 ‘보은 인사’는 관행으로 여겨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도가 지나쳐 자신 소유의 골프장과 리조트 회원을 대사로 지명해 “국무부가 ‘트럼프 컨트리클럽’이 되고 있다”(USA투데이)는 비난을 들을 정도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9일 내년 총선 출마 후보자가 거주 목적 외의 모든 주택을 처분할 것을 서약하자고 공개 제안했다. ‘노노(No No) 2주택 국민운동’이다. 앞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18번째로 발표한 ‘12·16 부동산 대책’ 직후 다주택 청와대 고위 공직자의 주택 처분을 종용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정부 고위 공직자의 주택 매각 권고에 나섰다.

앞으로 공직자 임용이나 국회의원 후보자 공천에 다주택 여부가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장·차관의 자릿값과 이른바 ‘금배지’로 일컬어지는 국회의원직을 주택값과 맞바꾸게 된 형국이다. 장관님이나 의원님 한자리하시려면 집 한두 채는 처분해야 하는 변형된 ‘한국판 매관매직’의 등장이다. 집을 팔아도 자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하현옥 복지행정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