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아동학대 범죄자에 유리한 양형요소…“10명 중 1명만 실형"

중앙일보

입력

부산도시철도 2호선 경성대·부경대역에 설치된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신고를 독려하는 홍보물. 송봉근 기자

부산도시철도 2호선 경성대·부경대역에 설치된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신고를 독려하는 홍보물. 송봉근 기자

“지난해 7월 3일 오후 12시58분부터 43분 동안 서모(55)씨는 피해자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잡아당겨 넘어뜨리고 교실로 끌고 가 20여회에 걸쳐 피해자를 발로 차고 손을 밟았다. 이모(54)씨는 이에 가담해 손으로 피해자의 등을 때리고 누워있는 피해자의 몸을 발로 2회 찼다.”

“지난해 7월 6일 오전 전모(53)씨는 피해자의 옷을 잡아끌어서 머리를 벽에 부딪히게 한 다음 손으로 피해자를 2회 때리고 머리와 엉덩이 등을 발로 여러 번 찼다.”

지난달 13일 서울남부지법에서 판결한 사건의 범죄사실이다. 수십차례 발길질을 당한 피해자는 지적장애 1급의 13세 소년 A씨다. A씨는 특수교육 사립학교 보조교사인 이씨와 돌봄교사인 서씨와 전씨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이들 세 명은 아동을 학대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모두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 법원은 폭행에 가담한 담임교사 이모(47)씨에게만 실형을 선고했다.

아동학대 범죄자 느는데, 실형 비율은 11%

재판을 받는 아동학대 범죄자 수는 매년 늘고 있지만 실형을 받고 수감되는 비율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아동학대 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법원의 양형기준과 양형요소가 솜방망이 처벌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자유한국당 이은재 의원이 대법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범죄처벌등에관한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로 1심 재판을 받은 139명 중 16명만이 실형을 받았다. 비율로 따지면 11.5%에 불과하다. 집행유예 선고 비율이 전체의 41.7%인 58건으로 가장 많았고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도 36건(25.8%)에 달했다.

아동학대처벌법은 울산에서 계모가 의붓딸을 폭행해 갈비뼈 16개를 부러트려 숨지게 한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2014년 제정됐다. 처벌을 강력하게 해 아동학대 범죄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취지 무색한 특례법, 올해 아동학대범 더 늘 전망 

아동학대처벌법으로 재판을 받은 사람 수는 2015년 38명에서 2016년 88명으로 급격히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139명에 달했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는 92명으로 1년을 기준으로 하면 법원의 아동학대범 처리 건수가 지난해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은 92명 중 실형이 선고된 사람은 11명(11.9%)이다. 아동학대의 고소·고발률이 낮고 검찰에서 불기소로 사건을 처리하는 경우도 상당수임을 고려하면 전체 아동학대 범죄 중 극소수에 대해서만 실형이 내려지는 셈이다.

이 의원은 “저항할 수도 없는 아동을 학대하는 것은 미래를 파괴하는 범죄로, 법원 역시 국민 법 감정에 맞춰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아동학대는 합의했다고 감형해선 안 돼"

전문가들은 이 같은 통계에 대해 법원이 피해 아동의 합의 의사를 주요 양형사유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법원이 아동학대에 대한 양형기준을 구체화하지 않아 형량이 낮게 책정된 일반유기·학대의 양형기준을 아동학대에 적용하는 점도 문제라고 보고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유기·학대는 징역 2월~1년을 기본으로 하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을 시 형을 감경할 수 있다.

이세원 강릉원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학대범죄에 관한 형사 판결 분석 연구’ 논문에서 “피해 아동 또는 그 가족이 합의한 경우 대부분 감형이 됐다”며 학대 가해자 대부분이 아동과 동거를 하고 있고 합의를 가해자의 권위와 물리력으로 받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합의가 감형 사유가 돼선 안 된다“며 ”아동학대 범죄만의 양형기준과 사유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