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 파기, 김현종·노영민이 NSC서 밀어붙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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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과정에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내 논의 과정을 다룬 기사가 실린 마이니치신문 9월 4일자 지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과정에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내 논의 과정을 다룬 기사가 실린 마이니치신문 9월 4일자 지면.

“한국 정부의 대일본 정책이 갑자기 강경해진 배경엔 안보에 대한 의식이 희박한 통상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 영향을 끼쳤다.” 일본의 진보 성향 매체인 마이니치신문의 4일 서울발 보도다. 신문은 “8월 15일 광복절 연설에서 일본에 대화를 요청한 문재인 대통령이 불과 1주일 후인 22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를 결정했다”며 당일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논의 과정을 보도했다.

마이니치, 소식통 인용 보도 #“정의용·서훈 안보라인은 신중 #통상전문 자립파 목소리 커져”

마이니치는 ‘정부 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회의를 주재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정원장, 한국군 중장 출신인 김유근 안보실 1차장 등 정보·외교안보 라인은 지소미아 파기에 신중했다”며 “반면에 수출규제와 관련해 일본에 대한 대항조치를 지휘하는 김현종 안보실 2차장, 여당과의 파이프 역할을 하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경제보복에 대한 대항카드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파기가) 결정됐다”고 전했다.

마이니치는 “광복절 전후로 한국 정부 내엔 일본에 대한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었다”고 했다. 광복절을 계기로 양국 간 고위급 외교 채널을 통해 관계개선을 추진해 10월 일왕(일본에선 천황) 즉위식에 문 대통령이 방일하는 안이 첫째였다. 그리고 또 다른 방안은 지소미아를 파기하고 실제로 협정이 종료되는 11월 하순까지 미국을 중재 역할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후자 쪽에 힘이 쏠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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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니치는 “자립파가 힘을 불리면서 미·일 중시파를 누르고 지소미아 파기를 관철한 것”이라고 요약했다. 그러면서 “김 2차장을 비롯한 자립파들이 ‘지소미아를 파기해도 한국 주도로 한·미 동맹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건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 주한미군의 한국 측 부담액을 높이면 한국의 자립노선을 환영할 것이라는 점을 읽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이런 외교 노선은 국민 여론의 지지를 배경으로 내년 4월 총선 때까지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한편 마이니치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강화 조치의 전말도 이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지난 6월 수출규제 조치 직전 관계 성·청 간부들에게 “신념을 굽히지 않되 출구를 찾으면서 하길 바란다”고 ‘출구전략’을 함께 모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이와 관련, 외무성 간부는 “(당시 아베 총리의 지시가) 한국을 움직이기 위한 ‘알람(경고)’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경고가 너무 강해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 대응팀 내에서 “느닷없이 반도체 (규제는) 좋지 않다”는 신중론도 나왔지만 “긴박감을 주지 않으면 문재인 정권에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는다”는 한 경제 각료의 진언(進言)에 아베 총리가 ‘고(go) 사인’을 냈다고 한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지소미아 중단 사태까지 맞고, 사태 해결이 요원해지자 아베 총리가 “한국과의 문제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주변에 말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문재인 정권 동안 관계 개선은 어렵다. 방치해 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마이니치는 “(일본 정부는) 전 징용공 문제에서 진전이 없으면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11월 칠레 개최)나 한·중·일 정상회의(12월 중국 베이징 개최)에서 한·일 개별 정상회담은 응하지 않을 구상”이라고 전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김상진 기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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