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트윗 한 방에 … 韓 WTO 개도국 지위 포기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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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은 지난 7월 한국과 중국 등을 지목해 더 이상 개발도상국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은 지난 7월 한국과 중국 등을 지목해 더 이상 개발도상국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P=연합뉴스]

우리 정부가 개발도상국(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같은 개도국인 중국을 겨냥해 날린 트윗이 한국을 움직인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농업 분야에 한해 개도국 특혜를 받고 있는데, 충격이 우려된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4일 기자들과 만나 “개도국 지위 포기로 방향을 잡고 추진하고 있으며, 관계 부처들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주장할 무역협상이 사실상 없고, WTO 회원국 일원으로서 확보한 권리는 개도국 지위와 상관없이 계속 갖게 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은 지난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당시 농업 분야에서만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기로 하고 선진국보다 관세를 덜 부과받는 대신 보조금을 많이 지급하는 등 특혜를 얻어왔다.

정부가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는 쪽으로 추진하는 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크다고 판단해서다.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고집할 경우, 미ㆍ중 무역분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개도국 특혜’를 계속 누리고 싶어하는 중국처럼 미국과 맞서는 형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26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WTO 개도국이 불공평한 이득을 얻고 있다”며 미 무역대표부(USTR)에 향후 90일 내 WTO 개도국 기준을 바꿔 개도국 지위를 넘어선 국가가 특혜를 누리지 못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중국을 겨냥한 트윗이지만 한국도 거론했다. 여기 따른 ‘데드라인’은 다음 달 23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OECD 가입국이면서 주요 20개국(G20) 회원이고, 세계은행에서 분류한 고소득 국가인 동시에 세계 상품무역에서 비중이 0.5% 이상 되는 국가가 WTO 개도국에 포함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는데 한국은 이들 기준에 모두 부합한다.

변수는 농수산업계의 반발이다. 개도국 혜택을 박탈할 경우 한국이 직격탄을 맞는 산업이 해당 분야라서다. WTO 협정 내 개도국 우대규정 조항은 약 150개다. 특히 농업에서는 선진국이냐 개도국이냐에 따라 의무 차이가 크다. 선진국은 개도국 대비 관세율과 농업보조금을 대폭 낮춰야 한다. 다시 말해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놓을 경우 높은 관세를 매겨 자국 농산물 시장을 보호하거나 보조금을 통해 국내 농산물 가격을 유지할 수 없다.

2008년 도하개발어젠다(DDA) 농업협상 의장이 내놓은 수정안에 따르면 한국이 선진국이 될 경우 쌀을 ‘민감품목’으로 보호하더라도 현재 513%인 관세율을 393%로 낮춰야 한다. 대부분 쌀 직불금으로 쓰는 1조4900억원 규모 농업보조금 총액(AMS)도 선진국으로 바뀔 경우 8195억원으로 한도가 ‘반 토막’난다.

이 관계자는 농림축산식품부를 염두에 두고 “최근 다른 부처 의견도 과거 반대 일색에서 다소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면서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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