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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온 양면 중국, ‘빅딜’ 브라질, 엎드린 대만…美 ‘개도국 엄포’ 각국의 전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

브루나이ㆍ홍콩ㆍ쿠웨이트ㆍ마카오ㆍ카타르ㆍ싱가포르ㆍ아랍에미리트(UAE)ㆍ멕시코ㆍ한국ㆍ터키ㆍ중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우대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한국을 포함해 ‘콕’ 집어낸 11개 나라다. 26일(현지시간) 그의 트위터를 통해서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여기엔 여러 함의가 있다. 먼저, 언급한 순서다. 트럼프는 “구매력 평가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 상위 10위권 국가 가운데 7개국이 개도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브루나이부터 UAE까지 7개 국가를 먼저 거론했다. 이어 멕시코ㆍ한국ㆍ터키 3개국은 “주요 20개국(G20) 및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면서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7개국보다 더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국이 가장 극적인 사례”라며 중국의 경제 성과를 줄줄이 열거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가 겨눈 타깃은 중국→한국 포함 3개국→나머지 7개국이라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두 번째는 WTO에서 개도국으로 분류하는데도 ‘트럼프 리스트’에서 빠진 나라다. 대표적으로 대만과 브라질이 꼽힌다. 이유를 살펴보려면 국제정세를 거슬러 가야 한다. 트럼프의 이번 트윗은 돌출 발언이 아니라 예고된 수순이었다. 그는 이미 지난해부터 ‘개도국 아닌 개도국’의 혜택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지난 2월엔 WTO에 ‘개도국 우대 혜택을 받기 부적절한 나라의 4가지 조건’을 포함한 개혁안까지 내밀었다. 트럼프의 그간 거침없는 행보에 유탄을 맞은 개도국은 다양한 배경에서 각자 전략을 갖고 대응해왔다. 대만ㆍ브라질이 트럼프 리스트에서 빠진 이유다. 개도국 지위를 둘러싼 각국의 전략을 들여다봤다.

강온(强穩) 양면 중국

지난달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트럼프와 시진핑(오른쪽).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트럼프와 시진핑(오른쪽).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은 미국과 무역을 둘러싸고 양보 없는 전면전을 벌여왔다. 중국이 받는 개도국 혜택도 무역 전쟁의 쟁점 중 하나였다. 여기서 중국은 겉으론 뻗대면서도 출구를 모색하는 ‘강온 양면’ 전략을 써 왔다. 일단 ‘세계 최대 개도국’을 자처하면서 개도국 지위는 절대 내려놓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인도ㆍ남아공ㆍ베네수엘라와 연대해 미국이 제안한 WTO 개혁안에 꾸준히 반대 목소리도 내 왔다.

하지만 마냥 혜택만 받겠다는 것은 아니란 입장도 밝혔다. 지난 4월 가오펑(高峰)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WTO 개도국 지위와 관련 “중국은 국제적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며 “WTO에서 우리의 경제발전 수준과 역량에 부합하는 의무를 기꺼이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국제사회 의무란 환경보호, 시장 개방, 사회원조 등 중국이 다소 껄끄러워하던 부분인 만큼 ‘유화책’이란 해석이 나왔다. 서진교 위원은 “개도국 지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리는 챙겨야 하는 측면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과 가장 가깝다”고 설명했다.

‘빅 딜’ 브라질

자이르 보우소나루(왼쪽) 브라질 대통령이 트럼프와 지난 3월 백악관에서 가진 정상회담에 앞서 트럼프의 이름을 새긴 브라질 축구팀 유니폼을 선물하고 있다. [AP]

자이르 보우소나루(왼쪽) 브라질 대통령이 트럼프와 지난 3월 백악관에서 가진 정상회담에 앞서 트럼프의 이름을 새긴 브라질 축구팀 유니폼을 선물하고 있다. [AP]

이번 트럼프 리스트에서 빠진 브라질은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계기로 WTO 개도국 지위와 관련 ‘탑-다운 ’식 빅 딜에 성공한 경우다. 지난해 10월 경제 성장을 앞세워 당선된 ‘남미의 트럼프’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지상 과제는 OECD 가입이었다. 브라질은 2017년 5월 OECD 가입 신청서를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였다. 남미의 대국이면서도 OECD 가입에서 멕시코(1994년)ㆍ칠레(2010년)ㆍ콜롬비아(2018년)에 뒤졌다는 조바심이 컸다.

빅 딜은 지난 3월 보우소나루가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와 만나면서 성사됐다. 트럼프는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브라질과 역사상 가장 좋은 관계”라며 “브라질이 OECD에 가입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보우소나루는 OECD 가입 대가로 WTO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기로 했다. 이후 미국은 지난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OECD 각료회의에서 브라질의 OECD 가입 지지 입장을 공식 확인했다.

바짝 엎드린 대만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콜럼비아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콜럼비아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시 트럼프 리스트에서 빠진 대만은 2016년 반중 성향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당선된 뒤 중국과 양안(兩岸) 문제로 껄끄러웠다. 차이잉원은 외교 면에서 미국에 바싹 밀착했다.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는 문제도 같은 선상에서 대응했다. 미국의 입맛에 맞춰 WTO 회의에서 선제 대응했다. 지난해 10월 앞장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왕 메이화(王美花) 대만 경제부 차장(차관)은 개도국 지위 포기 배경에 대해 “중국을 비롯한 한국ㆍ싱가포르ㆍ브라질이 여전히 개도국 우대 혜택을 누리는 데 대해 미국ㆍ유럽이 가장 큰 불만을 보인다”며 “대만의 결정이 모범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개도국으로 남기 원하는) 중국과 차이점을 강조하고 국제 위상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란 해석이 나왔다.

‘강 대 강’ 인도ㆍ터키

인도와 터키는 개도국 지위 박탈에 강하게 저항하는 모양새다. 아누프와다완 인도 통상장관은 지난 3월 “인도는 WTO가 정한 범위에서 수입 관세율을 지키고 있다”며 “미국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인도는 특히 중국과 연대해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고 있다. 터키도 비슷하다. 미국은 지난 5월 두 나라에 대해 주던 개도국 특혜 관세 혜택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두 나라가 강하게 버티는 데는 믿는 구석이 있다. 인도는 경제 규모는 크지만, 빈곤층이 많아 개도국을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는 국제 사회 컨센서스(합의)가 있다. 중국과 같은 상황이 아니란 얘기다. 터키는 전략적 요충지인 데다 러시아의 미사일 방공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군사 문제로도 얽혀있어 미국도 마냥 위협을 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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