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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513%, 마늘 360%…개도국 제외 땐 관세 보호막 깨진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개발도상국이 불공평한 이득을 얻고 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현재 인삼 754%, 양파 135% 관세 #쌀은 보조금도 절반으로 줄여야 #개도국 지위 조정 가능성 낮지만 #핵심 농산물 보호 대책 마련을

중국을 겨냥한 트럼프의 트윗에 한국이 유탄을 맞았다. 같은 ‘개도국’이란 이유에서다. 개도국 혜택을 박탈할 경우 한국이 직격탄을 맞는 산업은 농업이다.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랐는데도 불구하고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면서까지 받는 혜택이 관심을 끈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내 개도국 우대 규정 조항은 약 150개다. 특히 농업 분야에선 선진국이냐 개도국이냐에 따라 의무 차이가 크다.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놓을 경우 높은 관세를 매겨 자국 농산물 시장을 보호하거나 보조금을 통해 국내 농산물 가격을 유지할 수 없다. 김경미 농림축산식품부 농업통상과장은 “개도국 우대를 받으면 선진국 대비 모든 의무(관세감축·농업보조금 등)를 3분의 2만 이행해도 된다”고 설명했다.

대표 농작물이 ‘쌀’이다. 공급 과잉에도 불구하고 농민 반발, 식량 안보 등 이유로 수입 쌀엔 높은 관세를 매기고, 쌀 농가엔 보조금을 주는 상황이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결과 ‘예외 없는 관세화’ 원칙을 채택했지만 한국은 1995~2014년 쌀 관세화를 유예했다. 2015년부터 매년 40만9000t의 쌀을 의무 수입하는 대신 높은 관세율(513%)을 적용해 왔다. 100원어치 수입 쌀에 관세를 붙여 국내에선 613원에 판다는 얘기다.

2008년 도하개발어젠다(DDA) 농업협상 의장이 내놓은 수정안에 따르면 한국이 선진국이 될 경우 쌀을 ‘민감품목’으로 보호하더라도 현재 513%인 관세율을 393%로 낮춰야 한다. 대부분 쌀 직불금으로 쓰는 1조4900억원 규모 농업보조금 총액(AMS)도 선진국으로 바뀔 경우 8195억원으로 한도가 ‘반 토막’ 난다.

쌀을 제외한 필수 작물도 타격이 크다. 현재 수입산 마늘은 360%, 인삼(홍삼)은 754.3%, 양파는 135%, 대추는 611.5%의 관세를 물린다. 선진국 의무를 이행할 경우 마늘 276%, 인삼 578%, 양파 104%(각각 민감품목 기준)로 관세 장벽을 낮춰야 한다.

그러나 농식품부는 국내 농가의 피해 우려가 확산하는 것을 경계했다. 김경미 과장은 “(AMS의 한도가 축소되는 등의) 논의는 유효하지 않은 2008년 WTO 문서에 따른 것으로, 10년 이상 논의가 중단된 상태로 향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현재 적용하고 있는 농산물 관세나 보조금은 차기 농업협상 타결 때까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주장대로 개도국 지위를 조정하기도 쉽지 않다. 만장일치로 안건을 처리하는 WTO 체제 특성상 합의점을 찾기 어려워서다.

다만 WTO에서 합의하지 못할 경우 미국이 특정 국가를 정해 양자 협상에서 개도국 지위 포기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최근 미국은 브라질과 양자 협상을 통해 향후 협상에서 브라질은 개도국 우대 혜택을 누리지 않겠다는 ‘포기 선언’을 끌어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조차 발전 수준에 따라 국제사회에 기여하겠다고 공언한 이상 한국도 양보를 피하기 어렵다”며 “원칙적으로 선진국으로서 해야 할 의무를 늘려가되 갑작스러운 변화를 고려해 (쌀 등 핵심 농산물 보호를 위해) 매우 제한적으로 개도국 우대 혜택을 유지하겠다는 논리를 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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