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 ‘오염정화비용’, 50억 달러 방위비 인상에 대항 카드 될까

중앙일보

입력

1일 용산 미군기지 전경. [연합뉴스]

1일 용산 미군기지 전경.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청와대의 주한미군 기지 조기 반환 발표에 대한 외교가의 반응은 “왜 갑자기 지금?” “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등 두 갈래로 요약된다. “계속 진행돼오던 것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미”라는 청와대 설명에도 여러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정화 비용, 반환 지연 핵심 원인

 한ㆍ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한ㆍ미 동맹에 후폭풍이 이는 가운데 청와대가 대미 압박 카드로 미군기지 문제를 꺼낸 것 아니냐는 관측에 정부는 선을 긋는다. 하지만 그간 미군 기지 반환 협의가 지연됐던 배경을 보면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주한미군이 사용하던 기지에 환경오염이 얼마나 발생했는지, 정화 비용은 누가 얼마나 낼 것인지를 두고 한ㆍ미가 줄다리기를 벌여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서울 용산구 주한미군기지 인근에서 용산미군기지 온전한 반환을 위한 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용산기지 온전히 반환하라! 서울시민 평화담벼락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환경범죄 책임져라!' 등의 피켓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 서울 용산구 주한미군기지 인근에서 용산미군기지 온전한 반환을 위한 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용산기지 온전히 반환하라! 서울시민 평화담벼락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환경범죄 책임져라!' 등의 피켓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NSC가 이번 발표에서 원주의 캠프 롱ㆍ캠프 이글, 인천 부평의 캠프 마켓, 동두천의 캠프 호비 사격장 등 4곳의 기지를 꼽은 것도 이런 난맥상을 반영하고 있다. 모두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의 기지 반환을 위한 단계(반환 개시 및 협의→환경 협의→반환 건의→반환 승인→기지 이전) 중 환경 협의에서 발이 묶여 있다.

미군, 자의적 KISE 원칙 내세워  

여기엔 미군의 KISE(KnownㆍImminentㆍSubstantialㆍEndangerment to Human health) 원칙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측은 자국 법률에 따른KISE를 들어 ‘인간 건강에 대해 알려진ㆍ임박한ㆍ실질적ㆍ급박한 위험’에 해당하지 않는 한 원상복구 없이 기지를 반환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 때문에 그동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환경 정화 비용을 받지 않은 채 반환 작업을 진행해왔다. 군 고위 관계자는 “SOFA 상 반박할 근거가 없어 미측이 환경 비용을 내지 않겠다고 나오면 별다른 수가 없다”고 말했다.

미 방위비 흔들기 시도에 맞대응?

정부가 이달 중 개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11차 한ㆍ미 방위비 특별협정(SMA) 협상을 앞두고 복선을 깐 것이라는 해석도 그래서 나온다.
원래 미군기지 오염 정화 문제는 SOFA 환경분과위원회에서 논의된다. 주한미군 주둔 비용만을 다루는 방위비 협상과는 연관이 없다.

장원삼 외교부 한미 방위비분담협상 대표와 티모시 베츠 미국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 대표가 지난 2월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청사에서 한국이 분담해야 할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정하는 방위비분담금협정 가서명을 하고 있다. [뉴스1]

장원삼 외교부 한미 방위비분담협상 대표와 티모시 베츠 미국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 대표가 지난 2월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청사에서 한국이 분담해야 할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정하는 방위비분담금협정 가서명을 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미국은 이번에 한국에 50억 달러 부담을 요구하며 방위비 협상의 틀 자체를 흔들려 하고 있다. 기존 방위비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전략자산 전개 비용 등도 청구서에 얹었다. 외교 소식통은 “이 정도면 아예 SMA의 정의를 새로 써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판이 크게 흔들린다면 한국이 오염 정화 비용을 거론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기지 이전 비용, 방위비” 견해도

 실제 지난해 5월 한국국방연구원유준형 선임연구원은 국회 세미나에서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 지원에 5조 4563억원을 지출했다고 발표했다(2015년 기준). SMA를 통해 책정된 방위비 분담액 9320억원뿐 아니라 기지 이전에 투입된 한시적 비용 등도 더한 액수다. 반환 기지 토양 오염 정화 비용 84억원, 반환공여구역 토지매입 비용 1조 3442억원이 여기 속했다.

시민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들이 지난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과의 방위비분담 특별협정 협상 중단과 특별협정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연합뉴스]

시민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들이 지난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과의 방위비분담 특별협정 협상 중단과 특별협정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연합뉴스]

미 “선례 남길 수 없다” 강경

하지만 이를 방위비 협상에서 다룰 수 있는지는 한ㆍ미 간 별도의 합의가 필요한 문제로,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미국은 기지 반환 문제에서 선례를 남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군 소식통은 “미국이 한국 기지 반환에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경우 독일, 일본 등 전 세계 다른 미군 기지에도 기지 반환시 적용할 선례가 된다”며 “미국은 이 때문에 환경정화비용 부담에 대해서 확실히 선을 그어왔다”고 말했다. 대미 카드로서의 효용성은 미지수라는 것이다.

자주 선언, 민원 해소…국내정치용?

미국의 이런 강경한 입장을 모를 리 없는 정부가 미군기지 조기 반환 방침을 밝힌 것은 결국 국내 여론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콕 집어 명시한 4개 미군 기지 지역에서는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빨리 반환 작업을 마무리하라는 주민들의 민원이 폭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 이후 청와대가 사실상의 ‘자주 외교’를 강조한 것의 연장 선상으로도 볼 수 있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이에 불만을 표하는 것에도 할 말은 하자는 정부 내 기류가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부평미군기지 캠프마켓 토양 오염 정화를 협의할 민관협의회'에서 김유근 국방부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부평미군기지 캠프마켓 토양 오염 정화를 협의할 민관협의회'에서 김유근 국방부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군 당국은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 있는 한미연합사령부의 평택 이전에도 속도를 낼 방침이다. 연합사 이전 일정에 윤곽이 잡혀야 올해 내 용산기지 반환 절차도 시작될 수 있다. 군 관계자는 “미측과 명확한 시기를 논의한 바는 없다”면서도 “2022년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등을 고려해 최대한 그 전에 연합사 이전을 마치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양국은 평택 연합사 지하의 작전센터, C4I(지휘·통제·통신) 체계 등 보안 시설 설치 상황을 보고 이전 일정을 결정할 계획이다.
유지혜·이근평 기자 wisepe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