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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운동 10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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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신경진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1919년) 5·4의 민주주의와 과학의 이상은 아직 중국에서 실현되지 않았다. 신중국은 현대화에 매진했지만, 민주건설을 소홀히 했다. 과학의 역할을 강조했지만, 과학의 정신인 민주주의를 중시하지 않았다. … 우리의 상징인 천안문 아래에서 다시 민주주의·과학·자유·법제를 위해, 중국의 부강을 위해 함께 분투하자.”

1989년 5월 4일 베이징대학생연합회는 ‘5·4 선언’을 발표하며 민주와 과학을 외쳤다. 같은 날 자오쯔양(趙紫陽) 공산당 총서기 역시 민주를 말했다. “학생의 합리적 요구는 민주와 법제의 궤도에서, 개혁을 통해서, 이성과 질서에 부합하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아시아개발은행 이사진을 만난 자리였다. 하지만 5·4 정신의 부활은 한 달 뒤 천안문 앞에서 실패했다.

30년이 흘렀다. 지난해 12월 인민일보는 개혁개방 40년 공식 역사에서 1989년 봄(천안문 사태)을 이렇게 기록했다. “베이징 반혁명 폭란을 진압했다. 사회주의 국가 정권을 지켰다. 인민의 근본이익을 수호했다.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의 계속 전진을 이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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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에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수뇌부 25인을 소집해 ‘5·4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시대 가치’ 집단학습을 주관했다. “많은 청년을 정치적으로 인솔하라. 청년이 자각해 당의 영도를 견지토록 하라. 당의 말을 듣고 당을 따라 걷게 하라(聽黨話 跟黨走).” 시 주석은 청년을 강조했지만 5·4운동의 정신을 ‘바꿔 연주(變奏·변주)’했다.

5·4정신은 독일 카메라 제조사 라이카가 상기시켰다. “이 영상을 그들의 눈으로 우리가 볼 수 있도록 해준 이들에게 헌정한다.” 지난주 공개된 라이카 이미지 광고의 엔딩 자막이다. 광고는 1989년 6월 천안문의 ‘탱크맨’을 기록한 사진기자를 오마주했다. 독일이 중국을 대하는 정공법이다.

이보다 앞선 12일 미국 하버드대 페어뱅크 중국학센터에서 5·4 100주년 심포지엄이 열렸다. 마이클 스조니 센터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국 무역 적자를 끝내기를 원한다고 말하듯, 페어뱅크 센터는 미·중 사이의 ‘이해의 적자(understanding deficit)’를 해소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방법도 제시했다. “신장(新疆)과 미국 남부의 국경과 같이 자국의 결점을 비판적으로 사고하라. 무릎 반사처럼 상대방을 비난하지 말고.”

한·중 사이에도 ‘이해의 적자’ 폭이 산더미다. 미세먼지는 중국 탓,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는 중국 겨냥 등 ‘닥치고 비난’은 적자 폭만 키운다. 100년 전처럼 이웃 관계에도 민주와 과학이 필요하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