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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인가, 시대정신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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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정치팀 차장

김승현 정치팀 차장

후손들은 우리의 시대를 어떻게 기억할까. 최근 정치권에서 ‘시대착오(時代錯誤)’라는 말이 밥 먹듯 나와 문득 ‘시대’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 통상 변화된 새로운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나 방식으로 대처하면 시대착오적이라고 한다. 진부한 전(前) 시대의 사상이나 행위를 냉소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지금 여야가 서로를 바라보는 생각의 바탕인듯하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문재인 정부를 향해 “사실과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 역사공정”이라는 비판을 했다. “반민특위로 국민이 분열됐다”고 한 자신의 발언이 비난을 받자 “제가 비판한 것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2019년 문재인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을 색출해 전부 친일 수구로 몰아세우는 이 정부의 ‘반문 특위’”라고 하면서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선거제 개편을 ‘좌파 장기집권 플랜’이라고 한 한국당을 향해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으로 개혁 취지를 왜곡한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둘러싼 공방에서도 등장한다. “김정은의 수석대변인”(나 원내대표)이라는 표현에 “국가원수모독죄”(이해찬 민주당 대표)라고 비판하자 “권위주의 정권 때의 시대착오적인 대통령관(觀)”이라는 한국당의 반격이 가해지는 식이다. 지난 20일 한국당의 광화문 집회에서 문 대통령을 향해 ‘구걸’ 등의 표현이 나오자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좌파 독재, 종북 외교처럼 시대착오적인 막말이 넘쳐났다”고 비난했다.

1948년에 설립된 반민특위, 1988년에 사라진 국가원수모독죄가 마구 거론되는 지금은 도대체 어느 시대인가. 국민이 기겁하는 색깔론과 독재를 거리낌 없이 구사하는 지금의 반목은 시대착오인가, 아니면 시대정신인가. 우리의 시대를 지배하고 특징짓는 시대정신이 지금 이 모습으로 평가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김승현 정치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