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려난 김경수…PK 구심점 기대 속에 '사법의 정치화' 논란 촉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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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경남도지사가 18일 오전 법원으로부터 보석 허가 후 경남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청사로 첫 출근하고 있다.송봉근 기자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18일 오전 법원으로부터 보석 허가 후 경남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청사로 첫 출근하고 있다.송봉근 기자

여권에서 언필칭 ‘문(文)의 남자’는 몇 있지만, 그중에서도 으뜸은 김경수 경남지사다. 대선 당일 문재인 대통령의 차량에 동승한 유일한 정치인이 김 지사였고, 말 많고 탈 많았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사업 예산만 최다인 4조7000억원을 따낸 이도 김 지사다. 그는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직후부터 여권의 차기 내지 차차기 주자로 주목받다가 ‘드루킹’ 댓글 조작 공모 혐의로 구치소에 덜컥 수감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17일 보석으로 영어의 몸이 된 지 77일 만에 풀려난 김 지사는 “진실은 아무리 멀리 던져도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증명하겠다”고 말했다.

김 지사의 보석은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 당장 여권에 대한 민심이반이 심상찮은 부산ㆍ경남(PK)의 구심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진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김해에서 의원을 지낸 김 지사는 지난해 선거 때 선거의 달인이라 불리는 김태호 전 의원을 누른 뒤부터 PK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됐다.

문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PK는 2년 전 대선과 1년 전 지방선거 때까지 여권에 미증유의 지지를 보냈지만, 최근엔 그렇지 않다. 한국갤럽의 4월 둘째 주 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해 PK에선 잘한다는 평가(42%)보다 잘 못한다는 평가(46%)가 더 많은 ‘데쓰 크로스(death cross)’ 상태다.

민주당 경남도당 관계자는 18일 “김 지사가 돌아왔다고 당장 상황이 극적이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열심히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주민들이 욕을 하진 못할 거다. 그간 막혀 있던 각종 공약 사업들도 의욕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경남도청 공무원들은 김 지사가 풀려난 17일 오후부터 즉각 업무보고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김 지사는 취임 직후 같은 당 소속인 오거돈 부산시장, 송철호 울산시장 등과 부ㆍ울ㆍ경 광역단체장 협의회를 열고 김해 신공항 재검토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현안에 대한 세 단체장의 공조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오거돈 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지사의 도정 복귀를 환영한다. 아직 어려운 일들이 남아 있다. 잘 헤쳐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함께 가자”고 썼다.

한편으로 김 지사는 구속과 재판 과정 내내 ‘사법의 정치화’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당장 이날도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지사가 보석 석방된 것은 ‘친문 무죄, 반문 유죄’라는 이번 정권의 사법 방정식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이러니 ‘민주주의가 아니라 문주주의’라는 비아냥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당 일각에선 김 지사의 지사직 상실을 기정사실로 하고 보궐선거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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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지도부도 김 지사 구속 직후부터 “보복 판결” 운운하며 사법부를 공격했다. 민주당 사법농단 세력 및 적폐청산 대책위원장인 박주민 최고위원은 아예 김 지사의 1심 판결문 분석 기자간담회를 열고 재판부를 맹비난해 재판 불복 논쟁을 일으켰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박 최고위원은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판사들도 다수가 사법농단과 관련된 판사들이어서 걱정이 된다”는 등의 발언을 이어갔다. 사법부를 맹비난하던 민주당은 김 지사 보석 이후엔 “보석 결정을 내린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존중한다”(이재정 대변인)는 논평을 내놨다. 항소심과 상고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큰 후폭풍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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