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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공부 포기 학생’ 양산하는 교육…국가의 책임 방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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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교실에서 잠자는 학생이 많다. 한국의 교육행정가·교사·학생이 모두 아는 불편한 진실이다. 부모는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내 아이는 아닐 것이라는 믿음은 허망한 현실 부정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 학생이 외국 중·고교에 유학 갔을 때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수업 시간에 잠자는 학생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모든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놓고 책상 위에 엎드려 있는 학생, 그런 모습을 보고도 ‘수업 방해하지 않고 자는 게 차라리 낫다’는 태도로 방치하는 교사는 보기 드물다. “어디 아프니?”라고 묻는 게 정상이다.

기초학력 미달 증가는 정부 이념에도 어긋나 #정확히 진단하고 ‘낙오’ 줄이는 방법 찾아야

지루한 설명 위주 수업, 밤까지 이어지는 사교육으로 인한 수면 부족 등 학생들이 졸음을 피하기 힘든 다양한 이유가 있다. 이처럼 당장 바꾸기 어려운 현실의 문제가 있지만, 기초 실력 부족으로 수업을 따라갈 수 없는 학생이 공부를 포기하고 엎드린 것이라면 그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읽기·셈하기 등의 기초학력은 공교육이 반드시 책임져야 하는 ‘국민교육’이다.

교육부가 최근 공개한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는 왜 이렇게 학교에서 잠자는 학생이 많은지를 설명해 준다. 중학교 3학년 중 수학 기초학력 미달자가 1년 새 7.1%에서 11.1%로 늘었다. 영어는 3.2%에서 5.3%로 증가했다. 기본 연산을 못 하고, 기초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다는 얘기다. 이런 학생들에게 ‘진도 나가는’ 수업은 고문과 다름없다.

기초학력 미달자 중 상당수는 부모를 포함한 가족이 학생 학업에 관심을 갖기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이미 여러 조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이다. 학습 부진 상태를 보호자가 알지 못하거나 알고도 방치하는 가운데 ‘공부 포기 학생’이 속출한다. 가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세습’될 가능성이 큰, 평등을 강조하는 ‘진보 정부’가 가슴 아파해야 할 현실은 이렇게 계속된다.

가난이나 가정환경이 미래 세대의 꿈을 가로막지 않도록 하려면 공교육이 ‘기본’은 책임져야 한다. 어떻게든 영포자(영어 포기 학생)·수포자(수학 포기 학생)를 줄여야 한다. 기초 실력 부족 때문에 좌절하고 주눅 든 학생을 그대로 학교 밖 세상으로 보내는 것은 국가의 책임 방기다. 헌법 31조에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적혀 있다.

우선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교육부가 이번에 내놓은 것은 전국 학생 중 3%를 표본으로 삼아 평가한 결과다. 따라서 지역별, 학교별 기초학력 미달 실태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전국 학교를 대상으로 성취도 평가를 해야 보다 분명한 진단이 가능한데, 교육감들을 비롯한 진보 진영 교육계에서 지역·학교 줄 세우기라며 반대해 교육부가 나서지 못한다. 건강 상태에 따른 불이익을 얻을까 봐 건강검진을 못 하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교육부·교육청·학교·교사는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 공부 잘하는 학생을 더 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뒤떨어진 학생이 힘내도록 하는 게 교육자의 진짜 실력이다. 보충수업이나 방과 후 수업을 활용해 공부 포기 학생을 한 명이라도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수준별 수업을 부활시키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무엇을 위한 학교인지, 누구를 위한 교사인지 진지하게 자문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