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열발전, 해외서도 지진 유발...스위스는 시추 엿새 만에 '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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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별은 2017년 11월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 진원지를 표시한 것이다. 20일 포항지진 정부조사단이 발표한 분석결과, EGS지열발전소 측이 시추를 시작한 이후 수차례의 미소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앙포토]

빨간색 별은 2017년 11월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 진원지를 표시한 것이다. 20일 포항지진 정부조사단이 발표한 분석결과, EGS지열발전소 측이 시추를 시작한 이후 수차례의 미소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앙포토]

2017년 11월 15일 발생한 규모 5.4의 포항 지진이 인근 EGS지열발전에 의한 ‘촉발지진’으로 결론나면서, 과거 해외에서 발생한 유사사례에 정부가 보다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모성은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 공동대표는 20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 경과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그간 해외에서 이같은 사례가 수차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지진단층 조사도 없이 지열발전을 무리하게 추진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바젤 지열발전소, 3개월간 지진 168회 #스위스 당국, "물 주입ㆍ추출이 원인" #미국 지질당국, 지하 폐수 저장도 위험

실제로 2006년 12월 스위스 바젤에서는 지열발전소 측이 시추를 시작한 지 불과 엿새 만에 규모 3.4의 지진이 발생한 전례가 있다. 취리히 연방공과대가 2007년 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시추공 주변에 설치된 6개의 지진계가 관측한 지진은 무려 1만 3500회에 달했다. 2006년 12월 이후 3개월간 발생한 수치다. 대부분은 사람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미세했지만,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상위 200개는 리히터(ML) 기준 0.7~3.4 규모로 측정됐다.

한국지질학회 등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의 분석결과, PX-1과 PX-2 두 개의 시추공 깊이와 지진 발생 진원지가 거의 일치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노란색 별은 2017년 11월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 진원지다. [자료제공=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

한국지질학회 등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의 분석결과, PX-1과 PX-2 두 개의 시추공 깊이와 지진 발생 진원지가 거의 일치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노란색 별은 2017년 11월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 진원지다. [자료제공=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

특히 바젤의 경우 2006년 12월 2일에서 이듬해 1월 24일 사이 발생한 168건의 지진 진원지의 깊이가 모두 시추공 4~5㎞ 지점에서 형성돼, 정부조사단이 발표한 포항지진의 진원지 깊이(3.8km)와 유사함을 보여줬다. 당시 과학자들과 정부 당국이 3년여에 걸쳐 정밀 분석한 결과, 지열발전소 측이 땅에 구멍을 뚫고 물을 주입하거나 뜨거워진 물을 뽑아 올려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2009년 8월 독일 린다우인데어팔츠에서는 지열발전소의 발전용 관정으로부터 불과 450m 떨어진 진앙에서 규모 2.7의 지진이 발생했다. 당시 진원의 깊이 역시 3.3㎞로 발전용 관정의 바닥 부분과 일치했다. 이 외에도 2003년 12월 호주 쿠퍼 분지의 사막에서는 4.4㎞ 깊이로 시추공 2개를 뚫은 직후 최대 3.7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으며, 프랑스 알사스의 술츠수포레에서도 같은 해 5㎞ 시추공 2개를 뚫은 후 규모 2.9의 지진이 발생했다.

2015년 9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발생한 98개의 주요 지진을 선정해 분석, 물 주입과 연관관계를 분석한 그래프. 두 개의 공극에서 다섯 차례의 주요 자극이 가해진 후 지진 발생 빈도가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자료제공=포항지진정부조사연구단]

2015년 9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발생한 98개의 주요 지진을 선정해 분석, 물 주입과 연관관계를 분석한 그래프. 두 개의 공극에서 다섯 차례의 주요 자극이 가해진 후 지진 발생 빈도가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자료제공=포항지진정부조사연구단]

한편 지열발전과 유사하게 유정(油井)을 뚫는 석유 채굴의 경우도 지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석유 채굴의 경우에도 폐수를 지하에 저장하고 땅 속 석유를 회수하는 등 용도로 지하에 저류조를 건설, 물을 주입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지질조사국(USGS)과 콜로라도대 공동연구진은 2015년 6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이같은 행위가 유발지진을 일으키기 쉽다고 발표한 바 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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