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취임 100일…IMF선 경고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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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제10차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2019년 민간투자사업추진 방향 등에 대해 모두발언 하고 있다. [뉴시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제10차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2019년 민간투자사업추진 방향 등에 대해 모두발언 하고 있다. [뉴시스]

13일 취임 100일을 맞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전날 국제통화기금(IMF)으로 받아든 한국의 경제 성적표는 ‘합격점’ 이라기보다 ‘경고장’에 가까웠다. IMF는 이날 “한국의 경제 성장이 중·단기적으로 역풍을 맞고 있어 정책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관료로서 “일을 맡기면 무조건 성과를 낸다”는 평가를 받아온 홍 부총리에게 IMF 권고는 “지금처럼 해선 안 된다”는 채찍질로 들렸을 터다.

경제수장 맡은 뒤 소통 늘었지만 #일자리·투자·수출 여전히 부진 #최저임금·카드공제 등 혼선만

홍 부총리가 취임한 건 지난해 12월 10일이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생산·투자·고용 같은 경제지표에 ‘빨간 불’이 켜지면서 문재인 정부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주도 성장(소주성)’에 대한 지적이 높았던 때다. 홍 부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기업이 자신감을 갖고 투자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경제 불안 심리의 벽’을, 성과 중심 정책을 내놔 ‘정책 성과에 대한 불신의 벽’을, 정부·청와대는 물론 택시업계 등 이해 관계자와 소통하겠다며 ‘소통의 벽’을 깨뜨리겠다”고 강조했다. 경제 재도약을 위해 ‘3벽(壁)’을 허물겠다고 했지만 현재로선 소통의 벽을 제외한 두 벽을 허물지 못했다는 평가다.

먼저 경제 불안 심리의 벽이 굳건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1일 공개한 경제 동향에 따르면 기업의 투자 선행지표인 설비 투자 지수가 1월 16.6% 감소해 전월(-14.9%)보다 감소 폭이 확대됐다. 제조업 ‘대들보’인 반도체·자동차·건설 생산 증가 폭이 모두 전월 대비 쪼그라들었다. 잔뜩 움츠러든 기업이 채용을 줄이면서 고용 시장도 얼어붙었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11일 ‘3월 경제 동향’을 통해 “투자·수출 부진을 중심으로 경기가 둔화하는 모습을 지속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그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해 불신의 벽을 깨뜨리지 못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부지런하게 뛰었지만, 경제 사령탑으로서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홍 부총리는 취임 이후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 증권거래세 인하를 검토하겠다”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중소기업 가업 상속 제도를 완화하겠다”며 파급력 있는 이슈를 건드려왔지만 이해 관계자 반발과 지지부진한 국회 입법에 막혀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공유경제’를 대표하는 ‘카풀’의 경우도 어정쩡한 타협에 그쳤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홍 부총리가 규제 완화를 줄곧 강조해왔지만, 기업은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경기 둔화 신호가 곳곳에서 울리는 만큼 지금은 ‘검토’보다 ‘실행’에 무게를 두고 속도감 있게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장(김동연 전 기재부 장관과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불화로 대변되는 정부와 소통은 전임 대비 나아졌다는 평가다. 홍 부총리는 김수현 정책실장과 매주 금요일 만나 현안을 공유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정례 보고’도 격주 간격으로 당겼다. 매달 한차례 하던 회동 횟수가 더 늘었다. ‘녹실(綠室) 회의’ 같이 경제 관계 장관 간 격의 없이 소통하는 비공식 회의도 부활시켰다.

민생 현장 방문, 업계 간담회도 수시로 참석해 소통한다는 평가다. 다만 소통 과정에서 ‘오락가락’ 발언으로 혼란을 불러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재완 전 기재부 장관은 “100일이란 기간은 성과를 보여주기에 짧다고도 볼 수 있다”면서도 “소통이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좌고우면하거나 속도를 늦추는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매주 일요일 오후 열리는 기재부 1급 간부 회의 때마다 “우리는 이제 ‘성과’로 말하고 ‘성과’로 승부를 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홍 부총리 말에 스스로 답을 내야 할 때가 왔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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