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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어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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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탐사보도 에디터

고정애 탐사보도 에디터

2007년 3월 말 밤 미국 애틀랜타 교외에서 시속 55마일(88.5㎞) 구간을 73마일(117.5㎞)로 달리던 운전자가 경찰의 정차 요구를 무시하고 도주했다. 이 과정에서 무시로 중앙 차선을 넘나들었다. 경찰 차량이 끝내 도주 차량의 후미를 추돌했고 그 충격에 도주 차량이 전복됐다. 경추골절로 하반신이 마비된 운전자는 과도한 법 집행이라며 소를 제기했다.

미국 연방대법관 9명 중 8명(89%)은 그러나 경찰의 손을 들어줬다. 경찰 측의 추적 영상이 결정적이었다. “사리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동영상을 보곤 운전자가 다른 운전자와 보행자들에게 해를 끼치겠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례적으로 동영상도 공개했다. ‘보면 안다(I know when I see it)’는 취지다.

본다고 알까. 예일대 법대 교수인 댄 케이헌 연구팀이 가진 의문이었다. 미국인 1350명에게 물었다. 경찰의 추돌이 제법 정당했다고 본 이가 다수(60%)이긴 했다. 그러나 사회·경제·문화·인종·성적 배경에 따라 편차가 심했다. 백인이거나 남성, 연봉 5만 달러 이상 또는 공화당 지지자에서 그 비율이 높았다. 케이헌 팀은 되물었다. “누구의 눈으로 본 것을 믿겠는가(Whose eyes are you going to believe).”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가짜뉴스를 지속적으로 조직적으로 유통시키는 것에 대해선 정부가 단호한 의지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위의 사례처럼, 사실과 사실이라고 믿거나 인지하는 것 사이의 간격은 의외로 넓다. 정권이 사실이라고 보는 건, 사실 그 자체라기보다 사실이라고 믿거나 인지하는 것일 수 있다. 가짜뉴스도 마찬가지다.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이런 경향은 더 심해질 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게다가 ‘가짜뉴스’의 범주를 확장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보도로까지 말이다.

그런데도 ‘정권 차원의 사실’을 강제한다? 오히려 반대로의 믿음을 강화하는 길일 수 있다. 더욱이 “사회적 여건이 나쁘면 루머는 내용 진위와 관계없이 들불처럼 번지는 경향”(『루머』)이 있다. ‘단호한 대처’가 공권력의 동원을 의미한다면 더더욱 그러할 터다. 문 대통령이야말로 노무현 정권의 기자실 폐쇄 역풍을 기억할 거다.

늘 정권 초반엔 과도하게 이해받다가 후반엔 과도하게 오해받곤 했다. 그걸 거스르고 싶다면 현명해져야 한다. 사실 최근 이런저런 구설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을 듣다 보면 청와대야말로 ‘가짜뉴스의 생산’이란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나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