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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우리 쿨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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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동현
이동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동현 산업1팀 차장대우

이동현 산업1팀 차장대우

우리 ‘유사 가족’ 행세는 그만하기로 해요. 쿨한 관계로 지내자고요. 조직에 청춘을 바치던 시절은 끝났어요. 아버지 때에나 있던 얘기죠. 사실 그때에도 말만 그랬을 거 같아요. 궁금해하지 말고, 불필요한 질문도 삼갑시다. 같이 밥 안 먹어도 돼요. 전 ‘혼밥’ 잘하거든요.

엠티요? 콩글리시인 건 아시죠? 요즘 워크숍이라고도 하던데요. 이름은 워크숍인데 산행이 웬 말입니까. 뼈를 묻으라니요. 전 죽으면 화장할 거에요. 어디에도 묻힐 생각이 없어요. 가족같이 생각하라고요? 멀쩡한 가족 놔두고 내가 왜 당신이랑… 아, 좀 흥분했네요. 어쨌거나 노 땡큐입니다.

격려 방문을 오셨으면 격려만 하셔야지, 왜 노래방에 가자고 하시나요. 알지도 못하는 노래 잔뜩 예약해 놓고 혼자 신나셨더군요. 정말 격려하고 싶으시면 퀵서비스로 법인카드만 보내시든가, 금일봉을 보내주세요. 아. 카카오페이나 토스 편합디다. 송금해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고, 어쩌고… 죄송한데 그만 듣고 싶습니다. 네 인정해요. 전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못합니다. 그런데요. 그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이에요. 들어도 막 애틋하고 그렇진 않아요. 우리 아버지 얘기도 아니고. 사실 아버지 한잔하시면 늘어놓으시는 옛날얘기도 그렇게 감동스럽진 않거든요.

뒤늦게 페이스북에 빠지신 건 알겠는데, 이 사람 저 사람 친구 신청하지 말아 주세요. 제발 제 이름 태그 걸어서 포스팅하지 마시고요. 요즘은 유튜브만 하긴 하지만 타임라인 지저분해지는 거 정말 ‘극혐’이에요. 인스타그램도 예전 같진 않은데, 게시물 하나 없는 유령 계정이거나 비공개로 해놓고 친구 신청하시면 열에 아홉은 ‘읽씹’이에요. 아시죠?

애사심이 부족하다고요? 당초부터 그런 거 없어요. 일을 열심히 하게 하는 방법요?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하면 돼요. 돈을 많이 주고, 조직이 정말 잘 나가서 속한 것만으로 으쓱하게 하는 거. 돈만 많이 주거나, 조직만 잘 나가선 안 돼요. 어차피 조직 운영은 당근과 채찍이에요. 당근이 적어도, 채찍이 과해도 안 돌아가거든요.

아. 프로답게 손익계산 따져서 받은 만큼 일할게요. 보상하면 더 하고요. 놀아도 조직이 모른다, 더 해봐야 못 받는다, 그러면 뭐. ㅎㅎ 제가 나쁜 게 아니라 조직 관리를 못 한 거잖아요. 맞죠? 프로답게.

하고 싶은 말은 이거에요. 우리 비즈니스 관계로 만났으면 철저하게 비즈니스 관계로 지내자고요. 쿨하게. 질척이지 말고. ㅇㅋ?

이동현 산업1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