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할아버지’ 아버지 부시, 10년간 필리핀 아동 남몰래 후원 알려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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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컴패션 인터내셔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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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새로운 편지친구가 되고 싶구나. 나는 77세 노인이고, 우리가 만난 적은 없지만 처음부터 티모시를 사랑하고 있었어. 나는 텍사스에 살고 있고 때때로 편지를 쓰마. 행운을 빈다. 조지 워커가”

2002년 1월 필리핀의 7세 소년 티모시는 미국의 한 노인 조지 워커로부터 이같은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이후 이 노인은 10년간 티모시의 학비 등을 지원했고 자신의 말대로 종종 편지도 썼다.

학교를 졸업하고 17살이 됐을 때, 티모시는 마침내 조지 워커의 ‘정체’를 알게됐다. 미국의 41대 대통려을 지낸 ‘아버지 부시’, 조지 W H 부시였다. 그가 풀네임(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중 이름 일부만 사용해 자신의 신원이 들어나지 않도록 한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17살이 됐을 때, 티모시는 마침내 조지 워커의 ‘정체’를 알게됐다. 미국의 41대 대통령을 지낸 ‘아버지 부시’,  조지 W H 부시였다. 그가 풀네임(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중 이름 일부만 사용해 자신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부시 전 대통령이 이같은 방식으로 10년간 필리핀 소년을 남몰래 후원한 사실이 그가 별세한 후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19일(현지시간) 미국 CNN은 비영리단체 ‘컴패션 인터내셔널’을 인용해 “아버지 부시가 티모시라는 이 소년의 교육, 교과 외 활동, 식사 등을 위해 돈을 보냈다”고 전했다. 관련 내용을 담은 부시의 편지 일부도 공개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후원이 개시되자 곧바로 필리핀 소년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버지 부시 측 대변인인 짐 맥그래스는 부시의 편지들이 진짜라고 확인했다.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부시 전 대통령은 지난 2001년 워싱턴 DC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콘서트에 참석했다가 소년을 도울 생각을 갖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컴패션 인터내셔널’ 웨스 스태퍼드 전 회장은 “당시 뮤지션들이 청중들에게 우리를 소개하면서 후원 의사를 물었다”라며 “그때 경호원에 둘러싸인 채 청중석에 앉아있던 부시 전 대통령이 갑자기 손을 들고 팸플릿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경호팀은 팸플릿 내용이 진짜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비상이 걸렸지만, 그의 후원을 막을 순 없었다.

경호팀은 스태퍼드에게 “소년을 후원하려면 소년이 그의 후원자가 누구인지 몰라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에 따라 부시 전 대통령은 조지 워커라는 이름으로 서명했다고 스태퍼드는 전했다.

[사진 컴패션 인터내셔널 캡처]

[사진 컴패션 인터내셔널 캡처]

당시 경호팀은 티모시의 안전을 염려했다. 티모시가 전직 미국 대통령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면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부시의 편지엔 가끔 경호 규칙에서 벗어나는 내용이 담기기도 했다.

편지 곳곳에 후원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만한 암시적 표현이 사용됐다. 부시 전 대통령은 편지에 자신의 반려견 사진을 동봉했고, 자신이 크리스마스 때 백악관에 초청될 만큼 유명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편지를 꼼꼼하게 살폈어야 했다고 스태퍼드는 전했다.

한편, 티모시는 17살로 후원 프로그램이 종료될 때까지 자신의 후원자가 부시 전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이후 비영리단체 측이 필리핀을 찾아가 티모시를 만나 후원자의 신원을 알려준 것으로 전해졌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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