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앙시평

경제를 홍위병 문혁 나서듯 다루니…

중앙일보

입력 2018.12.14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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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남윤호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대리
남윤호 도쿄 총국장

남윤호 도쿄 총국장

2016년 5월 28일 일본 총리관저. 아소 다로(麻生太郎) 재무상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말했다. “재상이 되느냐, 포퓰리스트가 되느냐의 문제입니다.” 재정 건전화를 위해 공약대로 증세할지, 당장의 경기를 의식해 뒤집을지 선택하란 뜻이었다. 이틀 뒤 아베는 소비세 인상(8%→10%)을 2017년 4월에서 2019년 10월로 연기했다.

‘지표 견고, 민생 어려움, 경제 엄중’
대통령 경제관에 기복 보이기 시작
노조 불법만 잡아도 공기 바뀔텐데
인기영합 정책 빨리 전환 안 하면
5000만 총침체 걱정해야 할지도

이 선택론은 요즘 우리 정부의 고용정책에도 들어맞지 않나 싶다. 최저임금 인상, 공공 일자리 확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취지는 고결해 보이지만 거칠고 인기영합적 내용이 많다. 단물은 쉽게 빠지고, 비용 청구서는 곧 날아드는 법이다. 그 결과가 11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고용과 민생지표에서의 어려움’이다. 자업자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대와 현실의 괴리가 커져서인지 경제 상황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엔 기복이 생겨났다. 민생이 어렵다면서도 “거시적 측면에서는 여러 지표들이 견고하다”고 했다. 이런 식의 언설, 예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경제는 잘하고 있는데 민생이 어렵다”는 대통령 비서실장의 말이 기억나지 않나. 경제가 잘 돌아가는데, 거시지표가 좋은데 어떻게 민생이 어렵겠나.

하루 뒤 문 대통령은 “경제 상황이 엄중하다”고 했다. 24시간 전과는 온도 차가 느껴진다. 경제 상황에 대한 대통령의 설명에 요철이 생기면 맞고 안 맞고를 떠나 시장에 주는 메시지가 불분명해진다. 경제 주체들엔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 처음부터 경제가 엄중하다고 했으면 앞뒤가 맞았을 텐데, 지표가 견고하다는 말은 왜 했나. 대통령은 이코노미스트가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보좌하는 이들의 역량과 책임이 중요하다. 그럼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을 누가 써줬나. 입력 미스인가, 인식 부족인가.

남윤호칼럼

남윤호칼럼

12일 아시아개발은행(ADB)은 한국의 올해와 내년 성장 전망치를 각각 0.2%포인트 낮췄다. 올해 2.7%, 내년 2.6%다. 잠재성장률(2.8~2.9%)을 밑돈다. 해외에선 이보다 더 낮게 보기도 한다. 그뿐인가. 불황형 경상수지 흑자, 아슬아슬한 금리, 하락하는 제조업 가동률, 위기에 가까운 고용…. 견고한 지표를 찾기 어렵다. 경제 상황이 엄중하다는, 나중에 한 말이 맞다.

견고한 건 정부의 이념성과 아집이다. 그동안 마치 홍위병들이 문화혁명에 나서듯 경제를 다루지 않았나. 소신 있는 재상이 설 여지는 사라졌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생산성이 높아져야 한다. 규제가 강한 나라일수록 노동생산성 상승률이 낮아진다는 건 2006년 국제 비교연구에서 이미 입증됐다. 당시 미국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연구진은 15개 선진국을 분석하면서 한국을 포함시키진 않았다.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에 비추면 우리의 좌향좌 정책은 역주행 중이다.

게다가 우리에겐 다른 나라에서 보기 드문 핸디캡이 하나 더 있다. 강성노조의 불법행위다. 이번 정부 들어 특히 민주노총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그들의 태연한 불법행위와 폭력 앞에 공권력은 비실비실 물러선다. 민주노총이 이 정부의 주인인가, 채권자인가. 정부는 촛불에 대한 부채의식이 과하다. 사실 빚이 그리 많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촛불의 열기 속에서도 과반 득표를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 정부는 그 곁불을 쬔 정도 아니겠나. 또 ‘촛불=민주노총’은 더더욱 아니다.

이젠 실용적 성과가 급해졌다. 이를 위해 정책 방향을 전환하려면 먼저 할 일이 있다. 굳이 예산 안 들이고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민주노총의 불법행위를 때려잡는 것이다. 노조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일탈을 때려잡으라는 거다. 이거 하나만 해도 시장엔 명쾌한 메시지가 전달된다. 분위기도 금세 달라질 거다. 지지율이 빠질까 걱정하는 모양인데, 그 정도의 공백은 중도층을 끌어안아 메울 수 있다. 민주노총은 아파야 한다. 그들에게 무조건 나쁜 일만도 아니다. 민주노총에 쏠리는 비난 여론을 감안하면 지금 당하고 넘어가는 게 오래 사는 길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경제의 성장판은 슬슬 닫혀 가고 있다. 획기적인 방향 전환 없이는 시장경제의 체간(體幹)이 무너질 판이다. 과도기엔 사회·경제가 얼마간 흔들리다가도 정상화되곤 한다. 그런 유격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다만 선을 넘거나 오래 끌면 크게 탈이 난다. 우리의 경우 지금 오차의 범위를 벗어나 있다. 이념파의 눈엔 안 들어오겠지만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수많은 공중(公衆)은 피부로 느낀다. 이대로 가면 1억 총활약을 외치는 일본을 옆에 두고 5000만 총침체를 걱정해야 할지 모른다.

남윤호 도쿄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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