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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왜 선거제도를 꼭 바꿔야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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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우리는 선거를 대체 왜 하는가? 간단하다. 선거로 뽑힌 대표들이 나라를 안정적으로 이끌게 해 우리네 일반시민들은 각자의 자기 삶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우리를 대신해 우리들의 일을 처리할 좋은 대표를 뽑는 일은 곧 우리 자신의 삶을 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좋은 제도를 갖고 있지 못하면 좋은 대표를 통한 안정적 국가 운영과 갈등 해소가 불가능하다.

민심·의석비율·권력배분 일치는 #민주성·대표성·평등성 보장하며 #국가와 국민 삶의 안녕으로 귀결 #지금 민주주의에 중요한 원칙은 #모든 투표가 똑같이 계산되는 것 #대통령이 의회민주주의 초석 놓길

국제비교조사들이 보여주듯 한국적 삶은 정말로 힘겹다. 삶의 고단함과 곤고함은 연령과 성을 불문한다. 학생, 청년, 노인, 비정규직, 빈곤층, 하층민들은 너무 힘에 겨워 아예 희망을 버린 채 주저앉아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인구 소멸을 포함한 어떤 인간적 지표들은 너무도 나빠 언급하기조차 두렵다.

왜 그럴까? 우리의 정치가 놓여 있는 제도가 사회갈등 해소에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언급할 지표는 선거비례성과 사회갈등 지수의 상관관계다. 방대한 비교연구에 따르면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고는 선거비례성과 사회갈등 지수는 반대관계에 놓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을 비교할 때 한국은 선거비례성은 최악의 꼴찌 수준(21.97)이다. 당연히 사회갈등은 가장 높고(0.72) 타협을 통한 문제 해결은 낮다.

사회의 타협성과 안정성은 선거의 대표성 및 비례성과 같이 간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대통령들은 유효투표 대비 평균 43.80%, 선거인수 대비 평균 33.59%의 득표율로 100%의 제왕적 권력을 행사한다. 사표가 무려 56.20%에 달한다. 절반 이하 지지에 바탕한 권력 독점의 극적인 불일치다. 그는 개헌안·법률안 제출권, 예산권, 인사권, 감사권, 정책결정권을 모두 갖는, 세계적으로도 예외적인 불비례적 독임 권력과 초과권력을 소유한다. 대통령 인사권의 범위는 민주적 범주를 훨씬 초월한다. 결국 결선투표제나 장관 임명 동의제와 같은 최소 장치가 아니고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지켜지지 않는다.

박명림칼럼

박명림칼럼

의회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선거는 전혀 대의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평균 50.07%만 ‘산 표’이고, 49.93%는 ‘죽은 표’다. 무려 투표의 절반이 투표와 함께 즉시 죽는다. 우리 중 절반의 투표는 전혀 대표되지 않는다. 즉 대통령 선거와 같이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인 평등성과 대표성이 원천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못지않게 놀라운 점은 득표율과 의석률의 왜곡이다. 민주화 이후 제1당들은 평균 37.63%의 득표에 47.56%의 의석점유율을 갖는 의석 왜곡을 보여 왔다. 9.94% 차이로서 의석수로는 평균 30석을 초과 장악했던 것이다. 영남과 호남에서의 득표와 의석 왜곡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손해를 본 정당들은 민주개혁정당들과 진보정당들이었다. 후자는 말할 필요도 없고, 전자는 오직 열린우리당과 더불어민주당만이 제1당을 차지했을 만큼 손해가 컸다. 노무현 탄핵소추가 없었으면 열린우리당의 제1당은 쉽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가까스로 1당을 차지했다. 즉 현행 불비례적 반민주적 제도는 영남 기반 보수정당에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고대 이래 사회갈등 해소의 제일 원리로 꼽혀 온 국민의사-대의기구-집행기구 사이의 ‘비례적 일치’ 원리는 한국에서는 완전 거꾸로다. 절반 이하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과 절반 이하의 지지를 받는 여당, 제도 왜곡으로 인해 둘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기괴한 불비례적 권력 독점은 모든 대통령을 임기 초반의 제왕과 후반의 식물이라는 불행한 이중괴물로 만들어 버린다. 예외는 없었다.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는 민심과 의석비율과 권력 배분이 일치해 마침내 민주성·대표성·평등성을 보장하게 된다. 결과는 타협과 안정과 지속(성)의 정치이며, 그 결과는 국가와 국민 삶의 안녕과 향상으로 귀결된다. 누구에게 더 유리하지도 더 불리하지도 않은 공평한 제도다.

오늘날 의회민주주의의 출발원리인 1인 1표(one man, one vote)는 더 이상 강조되지 않는다.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다. 지금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모든 투표가 똑같이 계산돼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1표 1수(one vote, one counting), 그리고 1표 1가치(one vote, one value)다. 민주성과 대표성의 제일 원리가 아닐 수 없다. 모든 투표는 똑같이 계산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답이자 해법이다.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이 절호의 기회에 한국 의회민주주의의 초석을 놓기를 호소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