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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번역은 민주화 운동이었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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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9호 32면

책 속으로 

목민심서

목민심서

역주 목민심서 1~7권
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역주
임형택 교열, 창비

저술 200년 맞아 나온 역주 개정판 #1권 나온 지 40년 만에 전면 손질 #전두환 정권 감시 피해 번역 작업 #“인간생활의 모든 것 들어 있는 책”

1980년대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해외순방 길 비행기 안에서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찾았다고 한다. 출판사 창비의 완역본이 제공됐다. 일국의 지도자가 『목민심서』쯤은 지참해야 한다고 여긴 것 같다는 게 학계의 추측이다. 독재자도 어진 지도자 지침서를 찾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작 『목민심서』는 전두환 정권의 눈을 피해 번역작업이 이뤄졌다. 번역에 참여했던 학자 가운데 6명이 당시 정권에 의한 해직 교수였기 때문이다.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학자들이 들려준 비화다. 올해는 다산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집필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다. 다산은 강진 유배 마지막 해인 1818년 48권 16책에 이르는 방대한 이 책을 완성했다. 1978년 『역주 목민심서』 1권이 나온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1985년 첫 완역본 6권을 냈던 다산연구회 학자들은 몇 해 전 다시 뭉쳤다. 옛 번역을 바로잡고 문장을 현대적으로 고쳤다. 7권으로 늘린 『역주 목민심서』(창비) 전면 개정판을 이날 공개하고 책의 의미, 번역 뒷얘기를 전했다.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다산은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세계적인 학자”라고 했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의 디드로 등 백과전서파 계몽주의자들처럼 온갖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심오한 깊이를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개정판 교열작업을 한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목민심서』는 동양의 위대한 고전”이라고 했다. “일종의 지방행정 지침서이지만 분량이 방대하고 백성을 대하는 지방관의 도덕적 자세를 특히 강조한 책”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이나 국내에 비슷한 목민서가 수십 종에 이르지만 『목민심서』만큼 임시방편이 아닌 근본적인 차원에서 개혁적인 내용을 담은 책은 드물다고 덧붙였다.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개정판 역주 목민심서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 [사진 창비]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개정판 역주 목민심서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 [사진 창비]

임 교수는 “『목민심서』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어진 정치와 백성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읽다 보면 백성을 정치의 본위에 두는 민주주의적인 생각이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75년부터 10년간, 유신 말기에서 전두환 정권 시기에 걸쳐 『목민심서』 번역작업을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생각하고 진행했다”고 소개했다.

박정희 정권이 그냥 출현한 게 아니라 근대가 작용한 결과인 만큼 근대를 성찰하고 반성하는 차원에서, 그럼 애초에 우리에게는 뭐가 있었는가, 우리 문학과 사상, 역사를 연구하자는 뜻에서 시작한 게 『목민심서』 번역이었다는 얘기다.

목민(牧民)은 ‘소나 양을 돌보듯 백성을 잘 보살펴 안녕한 삶을 누리도록 한다’는 뜻이다. 『목민심서』는 지방 수령으로 임명받아 행장을 꾸리고 부임하는 대목부터 바른 몸과 마음가짐에 대한 율기(律己), 각종 의례·절차에 관한 내용인 봉공(奉公),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愛民), 그다음 이·호·예·병·형·공, 6개 분야에 걸친 수령의 행동지침, 마지막으로 자연재해로 굶주리는 백성들을 보살피는 진황(賑荒) 방법 등이 망라돼 있다. 가령 ‘조금만 법도를 넘어도 그 씀씀이에 절도가 없어질 것이다’라는 항목에 관련된 중국의 잘 된 고사(故事)와 그릇된 고사, 국내의 잘 된 고사와 그릇된 고사를 차례로 소개하는 식으로 사례를 풍부하게 모았다.

송 교수는 “때문에 『목민심서』는 이조 후기의 사회경제사 사전이라고 할 만큼 인간 생활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책”이라고 했다.

워낙 다양한 분야의 내용을 담고 있어 그에 걸맞은 다양한 전공의 학자들이 번역에 참여한 것도 특징이다. 한문학의 태두였던 고 이우성 선생이 이끈 초기 다산연구회 16명의 학자는 국사학·국문학·한문학·동양사학·경제사학·사회학 등 전공이 다채로웠다. 그 가운데 이우성·김진균 등 7명이 작고했다. 임 교수는 “번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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