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아르헨보다 낙폭 컸다 … 주식시장 코리아 패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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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주가 지수들이 10월 들어 전 세계 주요 지수 중 가장 많이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경제와 증시의 매력도가 떨어지면서 외국인의 한국 시장 외면, 즉 ‘코리아 패싱’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6일 코스닥 지수는 663.07로 거래를 마감해 지난달 마지막 거래일이었던 9월 28일 종가(822.27)보다 19.36%나 하락했다. 같은 기간 세계 주요 지수 중 최고 하락률이다. 코스피 지수도 같은 기간 13.48% 하락해 대만 가권지수(-13.78%)에 이은 세계 3위의 하락률을 보였다.

코스닥 10월 -19% 세계 최대 하락 #내수·투자 이어 수출까지 부진 #외국인 10월만 4조5000억 순매도 #미·중 반등할 때도 한국은 약세

코스닥과 코스피 하락률은 일본 닛케이 225(-12.17), 홍콩 항생 종합(-11.05), 프랑스 CAC40(-9.58%), 독일 DAX30(-8.54%), 중국 상하이 종합(-7.89%), 인도 센섹스(-7.94%) 지수 등 세계 각국의 중요 지수들보다 높았다. 심지어 경제 위기가 터져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급전을 지원받은 아르헨티나 메르발 지수(-12.23%)보다도 높은 하락률이었다.

미국·중국 증시가 조금이라도 내리면 급락하고, 이들 증시가 반등해도 제대로 오르지 못하는 등의 ‘왕따’ 양상도 감지된다. 지난 22일 중국 상하이 지수는 4.09% 급반등했지만 코스피 지수는 0.25% 오르는 데 그쳤다. 24, 25일에도 상하이 지수는 상승했지만 코스피 지수는 하락했다. 22일(현지시간)에는 미국 나스닥 지수가 0.26% 상승했는데도 23일 코스피 지수가 2.57% 급락했다.

외국인 투자자의 끝없는 매도 행진이 일차적인 원인이다. 외국인은 10월 들어 26일까지 4조5012억원의 기록적인 순매도를 기록하고 있다. 3년 전인 2015년 8월(-4조2950억원) 이후 가장 큰 규모다.

그동안 한국 증시는 신흥국 증시에서는 그나마 믿을 만한 곳으로 분류됐다. 상대적 안전자산이라는 인식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급락장에서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외국인은 한국 증시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물론 기술적, 대외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구용욱 미래에셋대우 리서치센터장은 “수출 중심의 한국은 미·중 무역전쟁의 부정적 영향을 특히 많이 받는 나라로 분류돼 주가가 더 크게 하락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기금이 한국 증시 투자 비중을 낮추면서 매도 행진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 등 수급이 꼬인 것도 한국 주가 지수의 상대적 낙폭 과대 원인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내부적인 요인, 즉 외국인이 한국 증시에 대해 느끼는 매력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증시는 투자 대상의 현재 가치가 아니라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곳이다. 그러나 한국 경제를 둘러싼 각종 지표에서 밝은 미래를 점치기는 어렵다.

당장 올해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크게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연초 책정한 3.0%의 성장률 전망치 달성은 이미 물 건너간 상황이다.

“기업 중심 성장 전략 내놔야” … 오늘 정부 점검회의 열어 대책 논의 

정부의 하향 조정치 2.9%는 물론이고, 한국은행이 두 번이나 낮춰 잡아 설정한 전망치 2.7% 도달 여부도 불투명한 실정이다.

미래 전망은 더욱 어둡다. 장래의 경기를 점칠 수 있는 시금석인 설비투자가 3분기에 전기 대비 4.7%나 감소했다. 내수도 부진하다. 한은에 따르면 3분기 내수의 성장 기여도는 -1.1%였다. 내수가 성장의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동안 한국 경제를 이끌어왔던 수출도 불안한 상황이다. 9월 수출액은 505억8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8.2% 감소했다. 개별 기업들의 실적 부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지표들이 미래에 대한 불투명성을 높여 외국인의 한국 증시 이탈을 부채질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리아 패싱’을 완화하려면 한국 증시의 매력도를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증시의 매력도를 높이려면 결국 증시를 구성하고 있는 기업들의 매력도를 높여야 한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기업 중심의 성장 전략이 나오지 않는다면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해야 하는 주식시장에서 기대 심리가 생겨나기 어렵다”며 “경제정책의 밸런스(균형)가 무너지면서 주식시장의 밸런스까지 무너지게 된 만큼 밸런스를 되살릴 수 있는 정책들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투자심리 회복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진위를 떠나 정부가 남북관계에만 신경을 쓰고 경제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식의 인식들이 있는데 이런 인식들이 증시에 불안감을 줄 수밖에 없다. 구두로라도 증시 활성화 방안 등을 언급해 증시의 기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NH투자증권과 케이프투자증권은 이날 이번 주 코스피 지수가 1960과 1980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00선 하회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해온 그동안의 태도를 바꿔 하회 가능성을 현실로 인정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르면 29일 2000선 하회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한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원회는 29일 오전 한국거래소·금융투자협회 등과 함께 ‘금융시장 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박진석·이후연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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